Chapter 4. 집에 간다는 것이 참 좋아
앤과 다이애나에게 샬럿타운에서 나흘간의 나들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직접 방문해본 샬럿타운은 아주 작은 다운타운이었지만 감자와 사과 농사를 주로 짓는 시골 에이본리 소녀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애에 길이길이 기억될 큰 사건을 뒤로하고 앤과 다이애나는 마차를 타고 다시 에이본리로 돌아왔다.
빨강머리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건 단순히 소녀들이 도시 라이프를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잘 담겨서만이 아니다. 그녀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 또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과 여행지에서의 즐거움,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그려진 완벽한 에피소드다.
앤과 다이애나는 처음 출발할 때만큼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아니 사실은 길 끝에 자신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는 생각에 더 즐거웠다. ‘아, 살아있다는 것도, 집에 간다는 것도 참 좋다.’는 앤의 말처럼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앤은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부엌으로 들어가니 저녁 식사가 따뜻하게 차려져 있었다. 앤을 위해 마릴라는 통닭구이라는 특식까지 준비해두었다.
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릴라와 매슈가 있는 집이 좋았고, 마릴라와 매슈는 앤이 없는 집에서 허전함을 느끼며 앤을 기다렸다.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인지 느끼고 또 느꼈으리라.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고, 밥값을 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쉼 없이 일해야 했던 앤에게 비로소 내 집과 내 가족이 생긴 것이다.
‘해결 방법이 연애와 결혼이라니 실망이다.’
나의 전작인 <나는 왜 엄마가 힘들까(책과이음)>을 읽고 누군가 남겼던 의견이었다. 나는 이 의견을 읽고 내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건강하고 좋은 연애를 추천하는 내용이 있었다. 방법의 하나로 제시했지만, 연애와 결혼만이 해결 방법이라고 주장한다고 느껴졌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연애와 결혼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었다. 충분히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을 함으로써 원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포용과 이해, 사랑, 안정적인 애착을 누리며 빨리 회복하는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만났다.
그렇다. 매슈, 마릴라 그리고 앤처럼 말이다. 매슈는 사회성이 부족했지만, 앤이 친구가 되어주고 딸이 되어주고 말벗이 되어주었다. 앤은 매슈와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마릴라는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앤을 통해 조금씩 유연해졌고 모성애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앤은 매슈와 마릴라를 통해 자신을 양육해줄 보호자를 얻었다.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더 행복해졌다.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건 앤이 느꼈던 것처럼 기쁨에 들 뜰만 한 일이며, 마릴라와 매슈가 느꼈던 것처럼 손꼽아 만날 날을 기다릴만한 일이다.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꼭 연애나 결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반려동물이라도 안정적인 애착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어느 날, 머리를 하며 미용실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야기가 원장님이 키우는 반려견들로 넘어갔다. 반려견 이야기를 하자 원장님의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포메라니안 두 마리 키워요. 포메라니안이 성격 까칠하다고 하는데 우리 집 애들은 성격이 너무 좋아요. 집에 가면 달려와서 어찌나 꼬리를 흔들고 반가워하는지……. 내가 어디 가서 이런 환영을 받고 사랑을 받을까 싶어서 행복하다니까요.”
나를 기다리고 반가워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나는 가정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해마다 돌아오는 내 생일을 가족들이 축하해주는 일도 손에 꼽았고, 학용품 살 돈이 없어 쩔쩔매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환영하지 않을 거란 오랜 불안은 놀랍게도 어린이 개구리가 태어나면서 사라졌다.
개구리가 혼자 집에 잠시 있게 되면서 나는 아이를 잠시 집에 두고 집 앞 마트에 다녀오곤 했다. 어느 날, 아이는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내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가, 나를 보고 ‘엄마! 엄마!’ 하며 반갑게 외쳤다. 헤어진 지 2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하듯 베란다 너머에서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아이를 보며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환영하고 있다는 행복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 의지하며 살아도 괜찮다. 든든한 안정감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강력하다.
Q.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봐요. 나에게 공감과 관심을 주며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보나 실질적인 물건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앤의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