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은 표출해야해

Chapter 2. 마음껏 말하려무나

by 썸머
제목을 입력하세요 - 2023-07-11T093509.278.jpg
제목을 입력하세요 - 2023-07-11T093509.278.jpg
제목을 입력하세요 - 2023-07-03T111013.378.jpg


하지만 매슈의 걱정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앤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처음 만난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이 느껴질 틈도 없었으니 말이다.


초록지붕집에 오기 전까지 앤은 함께 사는 성인들에게 노동력에 불과하였다. 어린아이들을 돌보았던 앤은 어울릴 또래도 마땅치 않아 혼잣말에 익숙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시대상, 아이들의 이야기를 어른이 주의 깊게 들어줄 리도 만무할 것이다. 스펜서 부인과 마릴라는 앤의 수다에 질색했다. 린드 부인은 앤이 버릇없다며, 제리는 앤이 혼자 중얼거린다며 이상한 소문을 에이본리에 냈을 정도로 앤은 말이 많았다.


매슈는 앤의 이야기를 불평 없이 잘 들어주는 유일한 성인이었다. 매슈는 억지로 들어준 것이 아니라 앤의 상상이나 끝없는 수다를 무척 즐거워하기까지 했다. 앤은 소설 초반, 성장 배경 때문인지 모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과도한 수다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곤 했는데 매슈는 이런 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는 몇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날것 그대로의 앤을 포용해준 것은 매슈와 다이애나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음껏 말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고 지지해주는 매슈를 곁에 두고 있는 앤이 늘 부러웠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간절히 찾아다녔다.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둡고 우울하고 힘든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런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 떠라 친구들은 즐겁고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를 하며 놀기를 원했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몰랐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가지고 있던 깊은 트라우마, 상처, 분노와 같은 감정을 다루고, 엄마 아빠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애교를 부리고,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를 웃게 해 주는 것은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마침내 찾은 방법은 ‘기도’였다. 오랜 시간, 기도라는 방법을 통해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었다. 신은 내 이야기를 지루해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았고, 언제 어느 때고 필요할 때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상대편에서는 내게 응답하거나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일방적인 외침과 절규에 답답하던 찰나, 나는 앤의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글이었다.


IMG_1842 (2).JPG [초록지붕집 유적지(Green Gables Heritage Place)에 세워진 매슈의 마차. 관광객들은 마차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앤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때때로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안타깝게도 듣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방대하고 끝없는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 앤은 이 상상력을 글쓰기에 충분히 발휘했다. 앤은 이야기 클럽을 조직하여 매주 소설을 써서 함께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앤과 친구들은 사랑, 살인, 도피, 신비한 사건과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함께 나누었다.


나는 앤처럼 머릿속에 가득 찬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인터넷 세상에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누가 들을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었다. 듣는 사람이 고려되지 않은 불친절한 콘텐츠였다. 감정은 정제되지 않았고, 내용은 중언부언하고 길이는 장황했다. 그저 이야기 클럽을 구성했던 몇 명의 소녀들처럼 소수의 사람이 공감해주면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매슈처럼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반응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 공감과 유대 속에서 나는 마침내 목 끝까지 차오르던 아픔과 상처가 비로소 해소된 기분이 들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놓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진심 어린 공감이었다.


쉼 없이 상상력을 쏟아내던 앤은 점점 자라나 어느 날, 말수가 줄었다. 거창하고 화려한 자신의 말이 비웃음을 당하거나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짧은 말이 더 강렬하고 효과적이라는 스테이시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간결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간결하게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서부터인지 앤은 생각은 가슴에 담아두고 말수를 줄여나갔다.


나 역시 마구잡이로 이야기를 쏟아내던 단계가 지나자, 내 이야기를 정제하고 정돈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황하게 아픔을 토로하고 감정을 털어놓는 것은 점점 줄었고, 상황을 객관화나 나만의 깨달음은 점점 늘어났다. 그러자 내 이야기는 더 효과적이고 강력해졌고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매슈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수천 명, 수만 명의 매슈가 있어 참 감사하다.




IMG_20211004_101012_826.jpg




Q. .표출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게 되더라구요. 저는 글과 유튜브 영상으로 상처와 아픔을 표출했었답니다.

여러분만의 배출구는 무엇인가요?

(예) 글로 적어보기/그림그리기/말로 털어내기/노래부르기 등




앤의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면?

https://www.ciderhealing.com/test/anne-affirm/

keyword
이전 02화현실을 잊고 싶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