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난 초록지붕집의 앤이야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여행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캐번디시(Cavendish)의 초록지붕집 유적지(Green Gables Heritage Place)일 것이다. 캐번디시는 에이본리의 실제 지명이다. 캐번디시에는 작가 몽고메리의 사촌들인 맥네일(Macneill) 가(家)가 소유했던 농장이 있다. 몽고메리는 어렸을 때, 이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나중에 이를 유명한 초록지붕집으로 소설 속에 등장시킨 것이다.
맥네일(Macneill) 가의 농장은 소설 속에서 묘사된 초록지붕집과 구조도 같다. 닭이나 소를 키우던 헛간이나, 초록지붕집 앞에 있는 유령의 숲, 뒤편으로 연결된 연인의 오솔길까지 모두 말이다. 초록지붕집에는 2층으로 올라가면 앤의 방이 재현되어있다. 2층의 다락방을 아늑하게 꾸민 방이다. 초록지붕집에 온 앤은 오래 방치되어 썰렁한 동쪽 다락방을 쓰게 된다. 하지만 동향인 창으로 청명한 햇살이 들어오고 창밖으로는 눈의 여왕과 다이애나의 방이 보였다. 그리고 썰렁한 다락방은 앤이 머물면서 포근하고 예쁜 여학생 방으로 점차 변모해갔다.
초록지붕집에 오기 전까지 앤은 자신을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하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상상이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지독하게 모질었던 삶이었기 때문이다. 초록지붕집에 머물기로 정해진 날도 앤은 습관처럼 자신이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상상으로 이 방을 꾸며야지. 바닥에는 분홍 장미 무늬가 있는 하얀 벨벳 카펫이 깔렸고, 창에 분홍 실크 커튼이 드리워졌어. 이건 소파고 분홍색, 파란색, 진홍색, 황금색의 휘황찬란한 실크 쿠션이 가득 놓여있지. 난 그 위에 우아하게 기대어 앉아 있는 거야.
나는 키가 크고 위엄이 넘쳐. 하얀 레이스가 달린, 길게 끌리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가슴에 진주 십자가를 드리웠고 머리에도 진주 장식을 달았어. 머리칼은 칠흑같이 검고 피부는 투명하고 창백한 상아색이지. 내 이름은 코딜리어 피츠제럴드 공주야."
하지만 예전처럼 몰입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을 하여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행색이 현실로 다가왔다. 더는 상상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넌 그냥 초록지붕집의 앤이야. 내가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할 때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인 네가 보여. 하지만 집 없는 앤보다 초록지붕집의 앤이 백만 배는 더 좋지 않니?"
그것은 앤의 상상력이 떨어졌다거나 앤이 갑자기 동심을 잃어버린 탓은 아니었다. 앤은 이후로도 초록지붕집 이곳저곳에 독특한 이름을 붙이며 상상을 나래를 펼쳤고 또래 여학생들과 이야기 클럽을 조직하여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으니까.
그것은 바로 더는 앤이 상상으로 자신의 현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초록지붕집에 오기 전까지 앤은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못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세 쌍의 쌍둥이를 돌보아야 했다. 앤은 상상 속에서 자신을 위안하고 위로하고 즐겁게 해 줄 방법을 찾았다. 앤은 오롯이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였다. 비록 여전히 못생기고 깡마르고 주근깨투성이에 머리카락 색은 빨갛지만, 앤은 모습을 상상하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로소 그녀가 처한 현실이 초등학생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나 역시 공상과 꿈에 부풀어 살던 시절이 있다. 몇 년 뒤,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현실을 견디고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현실의 나는 과거의 나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미래의 내 모습을 마치 현재의 나인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하고 꿈꿨다.
나의 꿈은 공상가였다. 무언가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놀라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상상을 하지 않으면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동화나 소설 작품을 읽었다. 그 안에 푹 빠져 내가 주인공이 된 것같이 몰입하였다. 그 덕에 초등학생 때는 '독서왕' 상을 몇 차례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독은 나에게 높은 언어영역 점수나 뛰어난 작문 실력으로 보답하지 않았다. 수없이 읽어댄 책은 그저 내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도피처의 역할만을 충실하게 했다. 책 안에서 나는 안전했고, 부유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책을 읽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다른 방법으로 상상의 도피처를 찾았는데,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한 것이다. 대학 시절 나는 수업 후, 친구들과 술을 사 먹을 돈이 없어 자진하여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어울릴만한 친구도 없이 대학을 다녀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게다가 학교에 다니기 위한 최소한의 차비와 밥값을 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아르바이트해야 했다. 대학이라는 시간이 긴 터널과 같이 느껴졌다. 졸업 후, 취업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꿈꾸는 회사로 이직을 한 내 모습을 자꾸 꿈꾸고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야 견딜 수 있는 하루하루였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끌어당김의 법칙이 가르치는 대로 간절하고 생생하게 수십 년 동안 끌어당겨 왔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시크릿 류에 대해 알지도 몰랐다. 어쨌든 생생히 매일 꿈꿨지만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지금 이룬 것들은 수십 년 동안 간절하게 끌어당겼던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뿐이다.
이제는 더는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 시각화했던 비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비로소 내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내 것이라 인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지금쯤 트리마제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이라거나, 벤츠 뒷좌석에 어린이 개구리를 태우고 대치동을 누비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손에 닿을 수 있는 만큼의 현실적인 미래를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다. 이건 분명한 차이였다.
아마도 결혼 후,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풍족하거나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더는 현실이 괴롭지 않았다.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웠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는 육아대백과사전의 정석처럼 개월 수에 맞게 잘 자라주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가정적이었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것만이 유일한 낙인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미래에 대해 상상을 하며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은 여전하지만, 상상으로 나를 위안하고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지방의 작은 아파트이지만 깨끗한 내 집이 있고, 함께 인생을 걸어갈 배우자가 있고, 아이는 체력적으로 힘들게 하지만 나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해마다 책을 내며 작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의지할 부모가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외딴 타지에서 살고 있지만, 30년 만에 비로소 충분히 직면하고 감당하며 살 수 있을 정도의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때로는 그 시절의 상상력이 그립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쓸 때면 말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나의 미래를 상상하거나 내 현재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신선하고 색다른 공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앤이 코딜리어 공주라는 상상은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낭만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Q. 앤은 자신 만의 공간인 동쪽 다락방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당신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들은 어디인가요?
앤의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