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아직 유행하고 있어서 정말 기뻐요
마음에 들어요! 아, 아저씨! 아저씨,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워요. 아, 뭐라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매 좀 보세요! 아,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요. 볼록한 소매가 아직 유행하고 있어서 정말 기뻐요. 소매가 볼록한 옷을 입어보지도 못하고 유행이 지나가 버리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았거든요. 절대 그냥 만족하지 못했겠죠.” -빨강머리앤 중
초록 지붕 집 유적지 2층에 있는 앤의 다락방을 들어서면 소매가 몸통 부분만큼 큰 밤색 원피스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있다. 마릴라 표 밋밋한 원피스들이 침대에 올려져 잘 보이지 않는 것과는 다른 대우다. 마릴라의 말대로라면 소매에 쓰이는 옷감만 아껴도 옷 한 벌은 더 만들 수도 있을 것이 옷감을 풍부하게 써 멋을 낸 볼록한 소매의 원피스이다. 앤의 빨강머리에 어울리도록 린드 부인이 고른 옷감이다.
이 옷은 앤이 초록 지붕 집으로 오고 1년이 훌~쩍 넘어서야 마침내 입어본 최신 유행 옷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풍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매슈가 우연히 앤의 옷차림이 또래 여학생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마릴라는 한결같이 수수하고 칙칙한 옷을, 늘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입혔다. 그리고 다른 여자아이들은 옷소매가 불룩하고, 허리 부분에 화사한 장식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었다. 매슈는 앤에게 예쁜 원피스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당시 옷을 산다는 것은 요즘과는 다르게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먼저, 카모디에 있는 상점으로 마차를 끌고 가서 적절한 옷감을 구매한다. 그러고 나서 옷을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느질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맡겨야 한다. 매슈는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난관이 부딪혔다. 스스로 옷감을 구매하지도 못했지만, 설사 옷감을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천을 고르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스스로 앤의 옷을 장만하는 데 실패한 매슈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에이본리 참견쟁이, 거칠지만 참견과 봉사를 좋아하는 린드 부인께 부탁한 것이다. 린드 부인은 흔쾌히 부탁을 수락한다. 순식간에 앤에게 어울리는 옷감과 옷의 스타일, 치수까지 구상해냈고, 2주 안에 뚝딱 옷을 만들어낸다. 사실 앤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던 것은 매슈뿐만이 아니었다.
린드 부인은 매슈가 부탁한 옷에 어울리는 리본까지 만들어 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한다. 앤에게 조세핀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덧신까지 신기니 매슈와 린드 부인뿐 아니라, 다이애나와 온 에이본리 마을 사람들 속까지 뻥 뚫렸을 것이다.
나는 마릴라와 비슷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 좋게 표현하자면 나의 엄마는 알뜰하고 검소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색하고 베풀 줄 몰랐다. 가난한 환경 탓인지, 그런 부모의 영향이었는지 나는 나 자신에게 매우 인색한 사람으로 자랐다.
이런 패턴은 결혼하고나서도 이어졌다. 나는 결혼하고 약 3년 정도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나는 어차피 미국에 갈 거라며 시부모님과 시동생이 쓰던 가전과 가구를 그대로 들고와 신혼 살림으로 썼다. 가끔 신혼집이라고 놀러오는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색이 누렇게 변한 <Gold Star(1958년에 설립된 '금성사(Gold Star)'는 1995년에 'LG전자'가 되었다.)> 로고가 박힌 전자레인지부터, 남편이 청소년 때부터 쓰던 책상과 의자까지. 신혼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액자 하나 걸려있지 않은 집은 놀러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짠순이로 열심히 살아가는 연예인이 전문가로부터 상담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악착같이 살아가는 그녀에게 상담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
“꽃을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돈 아까워요. 시들면 버려야하는데 왜 사나요?”
그 모습에 나는 격한 공감을 했다. 맞다. 곧 시들어 버릴 꽃에 돈을 쓰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식물이 있어야 한다면 화분을 샀을 것이다. 이왕이면 뜯어 먹을 수 있는 바질같은 허브나,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고 사는 산세베리아 같은 종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반박하는 상담사의 말은 의외였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런 상담사를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는 연예인. 그리고 나.
보고 기분이 좋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고?
돈 몇 푼을 아끼기보다는 자신의 행복한 기분을 위해 몇 푼의 돈을 지불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상담을 받는 연예인 만큼이나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 기분을 너무 무시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 난 너무 긴장했어, 다이애나. 앨런 목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정말이지 무대에 어떻게 올라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니까. 마치 수백만 개의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어. 순간적으로 입이 안 떨어져서 얼마나 끔찍했다고. 그때 내 아름다운 볼록한 소매가 떠오르자 용기가 났어. 그런 소매를 입을 자격은 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일단 시작을 했지.
매슈와 린드 아주머니가 준비해준 옷을 입고 발표회에 참여한 앤. 무척이나 긴장되었지만 옷에 용기를 얻어 무사히 발표를 마치게 된다. 소중한 물건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도, 위안을 주기도, 행복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이제는 내 감정을 먼저 채워주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Q. 나를 위한 스몰 럭셔리를 생각해볼까요? 쓸데없지만 기분 좋은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앤의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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