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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ul 25. 2023

그시절, 귀했던 음식

Chapter 13. 아이스크림은 천상의 맛이었답니다!


소설 <빨강머리앤>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반짝이는 호수’로 떠난 봄 소풍이다. 소풍 가는 날, 마릴라의 자수정 브로치가 없어져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소풍을 가지 못했는데 극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소풍에 참여하게 된 긴장감도 좋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앤이 난생처음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이다.     


빨강머리앤 소설 속에는 먹는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각종 과일인데 프린스 에드워드 섬 주민들은 대부분 직업이 농부인 관계로 집 앞에 과수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집에 열린 사과를 따가지고 다니며 간식으로 먹는다. 각종 과일을 넣어 만든 케이크나 청, 음료도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밀가루와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였기에 케이크나 쿠키, 빵 종류도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먹기 귀한 음식들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냉장고가 없다. 섬 한가운데 어디서 얼음을 구하기도 어렵다. 카모디의 상점에 가도 초콜릿이나 박하사탕은 구할 수 있지만, 아이스크림은 구할 수 없다.     


“전 아직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 봤단 말이에요. 다이애나가 어떤 맛인지 설명해 주려고 애썼는데, 상상만으로 아이스크림 맛을 알기는 힘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는 일 년에 한 번 주일학교 봄 소풍이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통의 가장자리에 얼음을 채우고 가운데에는 우유를 넣고 열심히 돌리면 우유가 부드럽게 얼면서 아이스크림이 된다. 평소에는 이 통도 구할 수 없고, 얼음을 구할 수도 없으므로 프린스 에드워드 섬 아이들에게 소풍은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된다. 더군다나 아이스크림 만들기는 균일한 속도로 열심히 돌려주는 것이 관건인 고된 노동이다.      




캐나다에서 유명한 카우스(Cows) 아이스크림 매장에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도 있었다.


앤이 태어나서 첫 번째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은 나에게도 귀한 음식을 먹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중 하나는 망고를 처음 먹었던 기억이었다.      


이십 대 초반까지도 나는 가까운 친척이 신혼여행으로 동남아를 다녀오면서 말린 망고를 사준 것 외에 망고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본 적도 없었다. 2003년 가수 이효리 씨가 델몬트 음료 광고를 하면서 구아바나 망고와 같은 열대 과일 이름이 대중에게 친숙해졌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전까지 한국에서도 백화점같이 고급 과일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생망고를 살 수 있긴 했을 거다. 다만 그런 비싼 과일이 내가 사는 동네에 진열될 턱이 없어서 구경도 못 해본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망고는 나에게 있어 상상 속의 과일 같은 존재였다.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디서 사야 하는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그런 과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새로 들어왔다. 나는 짐을 들어줄 겸 감자나 애호박 같은 채소를 사기 위해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갔다. 청과물 코너에는 작고 노란 망고를 팔고 있었고, 이걸 본 엄마와 나는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노란 망고를 딱 한 개 사서 왔다. 그 한 개도 절대 싸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가족이 오기 전 조용히 우리 두 사람이 먹어봐야 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고, 엄마는 비장하게 과도를 들었다. 한 번도 망고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과나 참외를 잘랐던 것처럼 일단 엄마는 망고를 반으로 가르기로 했다. 가로로 반을 자르려 하였으나 칼은 조금 들어가다가 말았다. 망고는 잘리지 않았다. 씨에 걸린 것이다. 당황한 엄마는 다시 세로로 반을 가르려 하였다. 하지만 역시 칼은 조금 들어가다 말았다. 망고는 이내 만신창이가 되었다. 결국, 엄마는 칼이 들어가는 지점까지 부분부분 망고의 과육을 떼어내었다. 씨 부분에는 섬유질이 많아서 먹을 수가 없고, 도려낸 과일에서 껍질을 깎고 나니 한 사람이 두어 입씩 먹고 끝이 나버렸다. 그 이후로, 망고에 대한 신비감도 사라졌고 그저 값이 비싼데 먹을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 미국에서 몇 년 동안 살게 되었는데, 동네 마트에서는 애플 망고가 개 당 2천 원꼴이었다. 학교 아파트에서 알게 된 필리핀 이웃 아기 엄마를 통해 망고를 깎는 방법도 배웠다. 멋을 내서 칼집을 내는 것이 아니라, 깍두기처럼 한입에 먹기 좋게 쓱쓱 썰어주는 것이었다. 한 접시 가득 깍둑썰기한 아이와 남편이 서로 경쟁하듯이 흡입했는데 이 모습을 보면서 잠시 가난한 처지를 잊었다. 가족에게 망고를 한 접시 가득 먹게 하다니 마치 부자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작은 사치는 한국으로 영구귀국하며 끝났지만 아직 곱씹어보는 즐거운 추억이다.     


선선한 저녁, 나는 샬럿타운으로 돌아와 캐나다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체인점에 들렸다. 그리고 괜스레 다운타운을 걸어 다녀보았다. 지금은 흔한 아이스크림이지만 난생처음 먹어보고 깜짝 놀라 ‘천상의 맛’이라고 표현했던 앤을 떠올리며.     





Q. '천상의 맛'으로 기억되는 추억의 음식이 있나요?





앤의 따뜻한 한마디가 필요하다면?

https://www.ciderhealing.com/test/anne-aff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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