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정말 우아한 브로치예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정말 우아한 브로치예요. 그런 브로치를 달고 어떻게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전 그렇게 못할 거예요. 자수정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잠깐 만져봐도 되나요? 자수정이 착한 제비꽃들의 영혼은 아닐까요? -빨강머리앤
검소하고 근면성실한 마릴라. 청교도적 삶을 몸소 실천하는 중년 여성이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소중하게 아끼는 사치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수정 브로치다. 보석함 같은 건 없던 마릴라는 바늘꽂이에 자수정 브로치를 꽂아 잘 간직했고, 교회에 가거나 외출을 할 때면 고상한 갈색 새틴 드레스에 자수정 브로치를 달고 다녔다.
이 자수정 브로치는 배를 탔던 삼촌이 마릴라의 어머니에게 준 것을 물려받은 것었다. 타원형의 구식 브로치 안에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들어있고, 가장자리로 자수정들이 박혀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자수정 브로치와는 조금은 더 투박하고 구식인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가장자리에 박혀있는 자수정은 꽤 질이 좋은 보석들이었고, 마릴라는 그 브로치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목 부분에 달면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반짝일 거라는 생각에 언제나 기분이 좋았던 마릴라다.
당시에도 뉴욕의 부자들은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다녔지만, 작은 시골마을인 에이본리에서는 마릴라의 자수정 브로치가 무척이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앤은 그 브로치를 처음 보자마자 홀딱 반해버렸다. 그 바람에 마릴라는 앤이 소중한 브로치를 잃어버렸다고 오해하는 해프닝이 한바탕 일어나기도 했다.
나에게도 이렇게 구식 디자인이고, 값비싼 보석은 아니지만 의미가 큰 장신구들이 있다. 결혼식을 앞두고 무뚝뚝한 시아버지가 건네준 것들이다.
“네 엄마가 쓰던 거다.”
시아버지가 준 낡은 지퍼백 안에는 도금이 벗겨진 붉은 알이 박힌 반지 하나와 색이 노랗게 변한 진주 세트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것이 내가 한 집안의 장손과 결혼하면서 받은 예물 전부였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남긴 전부이기도 했다. 처음 보는 빨간 알이 궁금해 당시에는 연락을 이어가던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거 산호야. 옛날에는 돈이 없어서 다이아몬드 대신 산호 반지도 많이 했었어.”
낡고 유행이 한 참 지난 예물들은 손에 끼워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즉시 화장대 서랍의 제일 안쪽에 집어넣었다. 이따금 눈에 띌 때마다 50년 인생에서 남기고 간 것이 볼품없는 장신구 몇 개뿐인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걸 예물이라고 받으며 가난한 집안에서 시작한 내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로 순탄치 못해서 더 불편했다. 넉넉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시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된 것만 같아 짜증이 났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결혼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다시 한번 이사를 했다. 시어머니의 장신구는 보석으로서의 가치는 없는 것들이었지만 유품이었기에 수차례 이사를 하면서도 잊지 않고 챙겼다. 나는 이번에 이사할 때도 시어머니의 장신구를 가장 먼저 내 손가방에 넣어두었고, 새집에 오자마자 어딘가에 보관할 곳을 찾았다. 팬트리 안쪽에 낡은 지퍼백에 담긴 장신구를 두려는데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시집올 때 시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과연 며느리에게 이걸 예물이라고 주셨을까? 나 또한 어머니께 쌍가락지라도 하나 해드리지 않았을까?
대접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삶을 사는 건 모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당장 종로에 있는 한 예물 가게에 전화를 걸어 예약했다. 낡은 지퍼백 속 예물을 유심히 살펴본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산호는 알을 떼어 리세팅을 했다. 다시 끼워본 진주 반지는 지난 세월 동안 손가락이 많이 굵어진 탓에 꼭 맞아 깔끔하게 광택을 했다. 거기에 더해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은 내게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다. 이 작은 장신구들을 보석함에 담아두니 말 그대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시어머니까지 이제라도 제대로 된 예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애용하는 것은 새로 세팅한 산호 반지다. 동그란 알이 귀엽기도 하고, 예스러운 멋을 내기에도 좋았다.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서 아오자이를 맞춰 입고 산호 반지를 끼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여섯 살 된 아들도 보석함에 있는 중 산호 반지를 가장 좋아하며 호시탐탐 본인이 갖겠다며 탐을 낸다.
“이건 여자 반지잖아. 나중에 네가 결혼하면 네 부인에게 줄게.”
그 말을 다 이해 못 한 것 같지만 어쨌든 제가 받는다고 하니 웃으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다. 먼 훗날 자식이 내 삶을 안타까워하고 불쌍히 여기기보다 더 늦기 전에 하나씩 누리며 살기로 했다.
Q. 꼭 남기고 싶은 나만의 물건이 있나요?
앤의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