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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01. 2023

경험을 사는데는 아끼지 않기

Chapter 15. 정말 근사한 밤이었지?

제인 : 정말 근사한 밤이었지? 나도 부유한 미국 사람이 돼서 호텔에서 여름을 지내고 싶어. 보석으로 치장하고 목이 깊게 파인 드레스도 입고, 아이스크림이랑 닭고기 샐러드도 먹으면서 날마다 즐겁게 보내면 좋겠어. 분명 그쪽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을 거야.     
앤 : 글쎄,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평생 다이아몬드로 위로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 나는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에 아주 만족해. 매슈 아저씨가 이 목걸이에 담아 주신 사랑이 분홍 드레스 아주머니의 보석 못지않다는 걸 아니까.     
빨강머리앤 중     



에이본리의 배경이 된 캐번디쉬에서 해안가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달베이 바이더 씨(Dalvay by the Sea) 호텔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흰 모래마을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초록 지붕 집 근방에서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배리 아저씨가 다이애나와 앤을 데리고 이 호텔에 데리고 와서 랍스타를 사주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로 큰맘 먹고 한 번 와야 하는 곳이었다.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부부가 묵었던 곳으로 유명한 이 호텔은 당시 뉴욕의 부자들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지리적으로 뉴욕과 가까운 데 보다 더 북 쪽에 있다 보니 선선하게 여름을 보내기 좋았을 것 같다. 호텔에서는 자선 콘서트가 열리곤 했는데 전문가들뿐 아니라 프린스 에드워드 섬사람 중 재능있는 이들이 재능 기부를 하기도 했다. 앤이 에이본리를 대표해 콘서트에서 낭송한 에피소드도 있었던 터라 나는 이 호텔도 여행 일정에 추가해 두었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화이트샌즈 호텔은 바다와 호수를 모두 끼고 있는 부티크 호텔이었다. 우리는 늦은 오후, 벽난로와 앤티한 가구로 가득한 다이닝 룸에서 홍합 요리와 위스키를 마셨다. 할 줄 모르지만 아이는 괜스레 테이블에 놓여있던 보드게임을 하고 놀았고, 그 시절 미국 부호가 된 것처럼 여유로운 오후를 즐겼다. 마치 파티에 참석했던 부유한 미국인이 된 기분이었다.      


한없이 여유로운 늦은 식사를 마치고는 호텔 앞으로 나가 아이는 잔디밭을 뛰어놀았고, 남편과 나는 의자에 앉아 잠시 호수 뷰를 바라보기도 했다. 큰 비용은 아니었지만 작은 럭셔리를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앤은 퀸 학원 합격자 발표가 나고 입학을 하기 전, 에이본리의 대표로 이 콘서트에서 낭독을 맡게 된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다이애나가 옷 선정과 머리 장식을 맡았고, 매슈가 시내에 나가 사 온 진주 목걸이까지 하고 호텔로 향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호텔에 도착하니 이게 웬걸! 미국의 부호들은 실크 드레스나 레이스 장식으로 가득한 드레스를 입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두르고, 온실 꽃으로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앤은 갑자기 부끄럽고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용기를 낸 앤은 멋지게 낭송을 해냈고, 콧대 높은 미국 부호들은 앙코르를 외치며 칭찬을 쏟아냈다. 앤과 친구들은 만찬에 초대를 받아, 아름답게 꾸민 큰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즐겼다. 동행하였던 제인은 미국 부인들의 화려한 다이아몬드나 호텔에서 보내는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앤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과 그것을 멋지게 해내었다는 성취감에 도취한 눈치였다. 어쨌든 마릴라의 말에 따르면 허영심만 부추기는 콘서트는 앤과 친구들 모두에게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달베이 바이더 씨(Dalvay by the Sea) 호텔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잠시 쉬어보았다.


나는 평생을 절약에 집착하며 살았다. 절약은 부모에게 유일하게 배웠던 경제교육이었고, 생존방식이었다. 남편이 박사 졸업을 하고 한국에 직장을 잡기 전까지 9년간의 결혼생활에서 우리는 변변찮은 가구나 가전제품도 없이 살았다. 구형 노트북으로 TV를 보고, 다른 유학생들이 몇십 불에 파는 중고 물건들을 구매해 썼다. 식비 또한 철저하게 관리하여, 알뜰살뜰 김밥, 수제비, 볶음밥, 떡볶이, 월남쌈, 짜장면 등을 만들어 먹고 식자재도 살뜰하게 관리했다. 몇백 원이나 몇천 원을 절약하기 위해 한두 시간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바로 내가 나의 욕구와 욕망을 철저하게 통제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욕구나 욕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10평대의 작은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왜 넓은 평수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유행하는 물건은 왜 유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절약은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으로 만들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데 돈을 써?'하고 생각하여 정작 써야 할 때는 벌벌 떨면서 누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아낀 돈은 엉뚱하게 새어나갔다. 평생 원망했던 나의 부모가 보여준 경제 패턴을 나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모을 줄만 알았지 쓰고 투자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답답했던 나의 시야를 트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사치들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호텔 체인을 이용할 기회들이 많았다. 늘 제일 저렴한 호스텔에 머물렀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고급스러운 호텔을 가거나 미술 작품을 종종 접하고, 정갈한 외식을 이따금 한다. 새로운 경험을 계속하게 해주는 것이다. 조금씩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의 안목이나 선택, 생각, 가치관이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호텔에서 제인은 화려한 삶을 사는 부인들을 직접 만나며 부자와 결혼하는 삶에 대해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위니펙(Winnipeg) 지역의 백만장자와 결혼을 한다. 그녀가 그토록 꿈꾸었던 다이아몬드들과 눈이 부신 새틴 웨딩드레스를 입고 말이다. 반면, 앤은 큰 성취감에 고무되었다. 자신을 압도하는 화려한 호텔 내부와 호화로운 차림의 부자들 속에서 당당하게 갈채를 받았던 경험은 힘든 퀸 학원 생활을 버틸 힘이 되었고 장학생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얻게 해주었다.     


가끔은 작은 사치도 중요하다. 물론, 매일 그런 삶을 살 수 없을지 몰라도 힘든 삶을 버틸 수 있도록 또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어줄 귀한 경험과 추억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Q. 내가 누려본 스몰 럭셔리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 경험으로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앤의 따뜻한 한마디가 필요할 때...


https://www.ciderhealing.com/test/anne-aff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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