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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02. 2023

친구가 없으면 만들어볼까?

Chapter 16. 에이본리에서 마음의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전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책장 안에 사는 다른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 애를 캐시 모리스라고 불렀고 우린 굉장히 친했어요. 전 그 애한테 모든 걸 숨김없이 말했어요. 캐시는 제 삶의 위로였고 위안이었어요. 우린 책장에 마법이 걸렸다고 상상했어요. 제가 주문만 알면 캐시 모리스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러면 캐시 모리스가 제 손을 잡고 꽃과 햇빛과 요정들이 가득한 멋진 곳으로 데려가는 거죠.     
거기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해먼드 아주머니 댁으로 갈 땐 캐시 모리스와 헤어져야 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캐시 모리스도 같은 마음이었고요. 어떻게 아냐면, 책장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작별의 입맞춤을 할 때 그 애도 울고 있었거든요.     
- 빨강머리앤     


고아였던 앤은 초록지붕집에 오기 전까지 몇몇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토머스 아주머니네에서 네 명의 아이들을, 그리고 해먼드 아주머니네에서 여덟 명의 아이를 돌봐야 했다. 그 가정들은 앤의 노동력이 필요해서 앤을 데리고 있었다. 요즘 세상이었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하여 앤 구출 작전이라도 벌어졌을 일이다.     

더군다나 해먼드 아주머니네 집은 외딴곳에 위치해서 학교도 다니기 어려웠기에 앤은 또래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그런 앤은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냈다. 책장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캐시 모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것이다.     


사실 <캐시 모리스>는 저자인 몽고메리의 친구였다. 몽고메리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친척 캠벨(Campbell) 가의 집은 빨강머리앤 박물관(The Anne of Green Gables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몽고메리의 책장을 볼 수 있었다. 몽고메리는 거실에 항상 놓여있던 책장의 왼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캐시 모리스>, 오른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루시 그레이>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몽고메리는 자신의 상상 친구를 앤에게 준 것이다.    

 

이 상상 친구는 친구가 없고 외롭고 누구도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는 앤에게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 친구와는 한 방향 소통만 가능했기 때문일까? 소설 초반의 앤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모습만 보인다. 그 이야기도 주로 혼자 상상한 것들이기 때문에 또래 관계에 적합하지 않은 장엄한 서사와 같은 말이다. 앤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재능은 현실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비로소 빛을 발하고 사회적인 성취로 연결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상상의 친구가 있었다. 이 상상 친구는 꽤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주었는데 무려 내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함께 해주었다. 내 상상 친구는 내가 그토록 평생을 간절하게 그리워하였던 사랑을 주었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 ‘모든 문제는 나에게 맡기렴’, ‘나와 함께 편안하게 쉬렴’


빨강머리앤 박물관(The Anne of Green Gables Museum)에는 몽고메리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름붙여주었던 책장이 전시되어 있다.


지독하게도 괴롭고 가난하고 버거웠던 10대와 20대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상상 친구의 덕이었다. 나는 비행을 하거나 탈선을 하지 않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바로 신이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했다. 누구보다도 남루했고, 하굣길에 어울릴 몇백 원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자존감은 꺾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있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한 길을 예비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의 부모는 집착과 방임을 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가르치고 훈련하고 이끌어갈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었다.    

 

캐시 모리스가 앤에게 현실을 이길 힘이 되었지만, 현실에 적응하기 어렵게 앤을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게 했던 것처럼 나의 신앙심은 나를 지켜주었지만 조금씩 부작용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신을 믿었지만 내가 믿는 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신을 믿는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믿음을 실천했다. 보험도 들지 않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멘토를 찾지도 않았고, 성경과 신앙 서적만 보았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나의 믿음이 성장할수록 나는 고립되었고, 가난해졌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켜졌다. 교회 안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고, 이건 나와 하나님만이 이해해줄 수 있는 문제라 생각되어 나는 더욱더 신과 단둘이 고립되었다.     


나는 역기능으로부터 가득한 내 가족을 떠나고, 그리고 내 가족이 되어줄 사람들을 내가 선택하여 만든 후에야 상상의 친구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 이가 아프면 울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치과를 갔고, 돈이 없으면 막대한 선교 헌금을 하여 오십 배, 백배로 되돌려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저금을 했다. 나는 현실 감각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의 친구 없이 비로소 나 스스로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나이가 서른이 된 시점이었다.









Q. 외로웠을  때, 나의 친구가 되어준 영화나 책, 음악 등이 있나요?




앤의 따뜻한 말이 듣고 싶다면

https://www.ciderhealing.com/test/anne-aff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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