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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19. 2023

건조는 아니고 반건조합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경험이,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깨달음이 이 길을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지도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허락해준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친다.

이 글은 결코 불안정형 애착끼리의 연애나 결혼을 장려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와 같은 결혼을 해야하고,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그와 나와의 관계는 건조는 아니고 반건조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책을 읽어도 늘 힐링 에세이나 성장소설을 읽었다. 따뜻함, 공감, 위로, 힐링을 추구했고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다. 


반면, 남편에게는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의 <목표지향적>인 성향도 있지만, 애착유형의 관점에서 보자면 회피형에게는 공감이나 위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회피형에게 위로란? "하나마나한 이야기", "허레허식", "입바른 소리"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영 내치지 않는 그들이다.


(MBTI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사족으로 붙여본다. 나는 ISTJ이고, 남편은 INTJ이다. 나는 공감과 위로를 원하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ISTJ이다. 나의 체계적인 브런치 글을 보라! 누가봐도 TJ다.)


나는 그와 함께 넓은 바다를 흐물거리며 헤엄치는 물오징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바늘로 찔러도 꼼짝하지 않는 건조 오징어였다.


나는 반건조 오징어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공존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훨씬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물론, 고부갈등 중재는 1분도 못하고 외면하면서도,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는 2시간도 떠들 수 있는 그와 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종종 그의 장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와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이해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는 부동산 강사들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성공한 사업가들의 생활 패턴이나 하는 말, 생각을 살피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남편과 많이 닮아있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무리하게 영끌 투자를 해서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나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남편을 발견한다.


"내가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당신이랑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봤잖아! 한번 들어볼래?"


(듣고나서)


"... ... 다들 그렇게 사는거 아니었어? 안그러면 어떻게 산다는거야?"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닐 수 있어.


앞만 보고 달려가며, 개인주의를 기본값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중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실패했고 일부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런 여러 케이스를 알게 되면서 힘든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나는 재테크로 성공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들은 말 중 놀랄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A: 요즘은 공부 잘하는 애들이 키크고 예쁘고 잘생겼어요.
나: 어머,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약간 외모에 관심이 덜하고 앉아 공부만 하니 부족하고,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외모에 관심이 많고 활동량이 많으니 얼굴과 몸매 뛰어난거 아니었어요?
A: 그건 우리 때(80-90년대) 이야기구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똑똑한 사람과 예쁜 사람이 결혼했잖아요. 
나: 아... ...


부모는 자식에게 돈만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지능, 외모, 키와 같은 유전자 뿐만 아니라, 부모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인맥과 같은 사회문화적 자본도 함께 물려준다.


여기에 더해 부모는 자신의 정서를 자녀에게 물려준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안정적인 애착, 유대관계, 건강한 의사소통능력, 공감능력 등을 물려준다. 반대로 '불안정형' 애착을 가진 부모는 자신의 불안과 회피, 건강하지 못한 의사소통능력, 과도한 집착 또는 회피라는 극단적인 관계까지 물려준다.


나와 가장 수준맞는 사람과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상대를 만나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비교적 평안하게 살 것이고, 반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부정적인 것 뿐인 사람들은 힘든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나와 남편은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하나?' 


가만히 있는 나에게 다가와 뒤흔드는 세상에 지쳐 쓰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고, 아이에게는 더 좋은 정서를 물려주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의 동요가 없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서로 결코 좁혀지지 않는 길을 마주보고 나란히 걸어간다. 그 길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서서히 좁혀져오고 있었다.




출처 : pixabay


남편과 나의 관계는 깨진 접시 같았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이가 나가고 흠집이 난 접시였다.


나는 오랜 시간 깨진 부분을 티안나게 붙이려고 애썼다. 아무리 애써서 겨우겨우 붙여 접시의 모양을 살려놓아도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금이 갔던 그 자리가 어김없이 산산조각났다.


설상가상 시간이 지날수록 깨지고 부서진 부분은 줄기는 커녕 늘어날 뿐이었다.


나는 한 번도 서로 트라우마를 주고 받지 않은 것 같은 관계를 꿈꿨다. 우리의 망가진 관계를 수선해보려고 애썼지만 실패했고, 아예 새로운 접시로 갈아타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이런 글을 봤다. 중국의 유명한 식당은 일부러 낡고 이가 빠진 그릇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 그릇을 통해 가게가 얼마나 역사가 오래되고, 수많은 손님이 다녀왔는지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한 번도 상처를 주고 받지 않은 것처럼 그저 사랑만 한 것처럼 보이길 바랬던 내 욕심을 내려놓았다. 오히려 이 상처들은 우리가 지나온 흔적,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게 빠르겠다고 싶을 만큼 치열하게 노력했던 시간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그릇의 깨진 부분을 고쳐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긴쓰기 예술이 있다고 한다. 그릇이 깨진 부분을 금으로 도금해서 작품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결코 불안정형 애착끼리의 연애나 결혼을 장려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와 같은 결혼을 해야하고,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당신이 어떤 애착유형을 가졌건 #안정형 이 최고의 연애상대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경험이,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깨달음이 이 길을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작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허락해준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친다.



애착유형 이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클래스101 강의 확인해주세요~

https://101creator.page.link/BZ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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