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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피형 남편이 9년 만에 한 청혼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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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19. 2023

회피형 남편이 변화를 결심하다

글을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회피형 남편이 자신이 회피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었는가?"였다.

회피형이 변화를 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피형 애착유형은 자기긍정-타인부정을 의미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회피형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기 어렵다.

다 상대가 너무 의존적이어서, 상대가 애정결핍이어서, 상대가 독립적이지 않아서... ... 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으니 회피형으로서는 자신이 변해야할 이유가 없다.

회피형이 '사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가정을 하게 되려면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야한다. 벼랑 끝에 몰려서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라며 삶과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만 한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회피형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생각했다.

'와이프는 체력이 약하니까 육아가 힘든거야.'

'와이프는 친정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감정 조절이 어려운거야.'

'와이프는 나에게 엉뚱한 화풀이를 하고 있어.'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상황에서 본인의 잘못과 책임은 고려하지 않았다.

나의 취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집의 살림살이들을 보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이프는 살림에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다 고르고 결정해야해서 힘들어.'

나는 싸우기 싫어 그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다. 우리는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이 속절없이 흐르기만 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하지만 2차 대첩으로 남편은 더이상 자신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소리를 질렀다. 살고 싶지 않은 집에서 살아야하는 나는 하루종일 화가 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어서 분노가 솟구쳤다.

그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애썼지만 매번 실패했다.

누구도 먹지 않는 케이크를 사왔고, 대화를 한답시고 전혀 관심없는 재테크 이야기를 한 시간씩 했다. 감각이 예민하고 욕구주머니가 큰 아이는 짜증과 신경질이 많았다. 하루종일 아이의 짜증 받이를 한 나를 위한다면 아이를 데리고 잠시 나갔다 와주면 좋으련만 꼭 셋이 같이 움직이자고 했다.

나의 화는 점점 거세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남편의 완강히 화해를 거절했다. 내가 화를 내면 그는 진심어린 사과를 했고, 늘 반복이었다. 결국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확인받은 것이 바로 이 불안형-회피형의 싸이클이다.

우리는 서로 합의점을 찾고 양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싸이클을 그저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불안형이 불만을 터뜨리고 관계를 종료하려고 하면 회피형은 화해를 청한다. 어느 정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불안형은 '이제는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지?', '이정도는 기대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다가간다. 하지만 회피형에게는 너무 부담스럽다. 한 발자국 뒤로 빼는 회피형에게 불안형은 실망하고 화가 난다. 참다참다 불안형이 화를 낸다. 그러면 회피형은 다시 화해를 청한다.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보자면 도돌이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남편의 회피가 아주 조금씩 낮아졌다는 점이었고, 나의 불안과 회피도 조금씩 낮아졌다는 점이었다.

나는 애착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클래스101 강의로 제작었다.(https://101creator.page.link/BZCX) 강의를 보면 자료로 꽤 많은 도식이 등장한다.

그 이유는 남편과 대화를 할 때, 감정에 호소하고 말로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는 통계와 데이터, 그리고 도식으로 이야기했을 때 아주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회피형 배우자나 연인과 대화해야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도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