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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Oct 26. 2023

캐나다는 지금 수채화 작업 중


여름이 마지막 초록빛에 매달려 이별을 나눌 때

나는 한 필의 붓과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여행의 신 헤르메스를 찾아 나선다. 그녀의 거침없는 숲 속에서의 모험처럼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경험의 설렘을 안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캐나다의 가을은 살갗을 뚫는 아픔을 견딘 메에플의 상흔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고통은 어느새  화려한 빛깔로 아물고 기꺼이 인간을 위해 고운 단풍길을 열어준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메이플의 고통이 농축된 시럽의 달콤함에 빠져 떨어지는 잎새의 죽음에게 마저 환호를 보낸다.

겨울의 옥쇠를 뚫고 나와 여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봄을 내어주고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 같은 꽃과 향내로 여름 내 열정을 붙태우다 가장 화려한 절정에 이르러 인간의 발길과 겨울의 냉기에  빛을 잃어가는 가을이야 말로 진정한 계절의 순교자가 아닐까.


거침없는 헤르메스에게도 한 순간의 기막힌 붓의 노련함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여행길에 비를 막아주어 밝은 태양과 동행하게 하던  트레블 엔젤 헤르메스가  캐나다 가을 초입에 서 있는 나를 한주 내내 오락가락하는 비에 노심초사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 비의 농도로 단풍 로드의 채색은 엷고 진하게 때로는 다시 초록빛을 돼찾으며 연신 가을의 놀라운 색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원색의 붉은 빛깔이 아닌 파스텔 톤의 좀 더 투명하고 맑은 색을 만들어 내기 위해 빗물에 붓을 적시면서...


여행객에게는 불청객 같은 하루 종일의 비 마저 그 단풍 빛에 물들어 어느새 잠시 쉬어가는 비의 휴식 사이로 일곱 빛깔 무지개가 얼굴을 내미니 그야말로 가을의 땅 캐나다는 모든 빛깔이 조화를 부리며 소리의 신들과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곳이었다.

구름 띠를 따라 나르는 물새와 철새, 수 없이 많은 늪지와 습지에서 춤을 추는 억새들의 율동과 그 율동에 가락을 던지는 바람과 물흐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동물들과 늪지 데크 길에서 만난 나이를 알 수 없는 거북이의 느린 발걸음 소리마저 오선지의 화음이 되고 자연은 오케스트라가 되어 세상을 연주하고 있었다.  


메이플 시럽 같은 연인들의 달콤한 눈빛 교환과 가을 단풍에 흔들리는 계절 취객의 정다운 인사가 여행자의 마음을 한없이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는 10월의 캐나다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것조차 허락하지 못하는 질투의 여신 메데이아는 겨울의 냉기를 밤사이 소리 없이 보내 연약한 나뭇잎 들을 검게 변화시키고 마는 자연의 오묘함 움직임,  그 속에서 눈치 없는 인간들의 즐거운 감탄소리가 어우러져 캐나다의 단풍로드는 한창 계절의 유희에 빠져 있다. 헤르메스와 메데이아 두 여신의 힘 겨루기가 시작된 캐나다의 가을은 채색을  시작하자마자 찾아오는 빠른 겨울의 진입 때문인지  다른 곳 보다 빠른 진행의 색깔 변화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깊은 숲 속을 걸으며 마주하는 같은 시야 안에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색채의 빠른 속도감은 아무래도 두 여신의 놀라운 기싸움이 이 숲 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을 소환하기도 한다. 순간 숲은 동화의 나라가 되고 나는 요정이 되어 여인의 속살 같은 자작나무 잎에 잠시 머물며 그 살갗에 입맞춤하니 자작나무 향이  코끝에 머물며 또 다른 가을을 선사한다.


북미 알프스라 불리며 스키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몽트랑블랑도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의 천섬도 빨간 머리 앤을 탄생시킨 캐나다의 소설가 몽고메리의 생가 프린스 애드워드 아일랜드도 캐나다는 한창 지금의 가을을 기억하기 위해수채화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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