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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Nov 03. 2023

나의 본케는 주부다.

   

요즘 본캐와 부캐라는 신종어가 유행이다. 본캐는 본캐릭터라는 뜻으로 원래 가지고 있는 직업을 말한다. 부캐는 부가적으로 하는 일을 뜻하며 부캐릭터를 이르는 말이다. N잡러라는 용어는 부케와 맥락이 비슷해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말의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대부분은 전문 직업인의 새로운 직업에 대한 도전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의 본캐를 가진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화가 활동은 그 의사의 부캐가 된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작가 활동을 한다면 그 활동 또한 부케가 되고 그 사람은 N잡러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자칫하면 뭐든 잘하는 사람의 전유물처럼 잘 나가는 사람을 더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캐든 N잡러든 해보고 싶었던 마음속의 꿈을 이루어보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이 용어들의 속내에는 그 사람의 직업 배경과 능력에 대한 부러움도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활을 위해 여러 직종을 분주하게 오가며 일하는 경우 자신을 N잡러라고 표현하며 현실의 처지를 풍자적으로 위로하기도 한다.

    

보통 부캐를 갖기 이전에 어느 정도 본캐의 이미지로 자리를 굳히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필요에 따라 부케를 가져야 하거나 N잡러가 되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보통 20대 30대에서 많이 쓰인다고 하는 본캐와 부캐라는 새로운 언어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진짜 원했던 것을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고 가까이하고 싶은 용어는 아닐까     


나의 직업은 주부다.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고 어느 정도 집안 경제 부흥을 위해 머리를 굴리며 회계를 담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마음 치유를 위한 상담과 상담사를 위한 교육을 하기도 한다. 자기계발 또는 나의 정체성을 운운하며 진짜 직업 인양 선택했지만, 숨어있던 경제적 독립에 대한 욕구가 더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나의 직업은 경제적 부담과 무관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주부란 전문가도 그렇다고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적 자리도 아니지만 가장 전문적이고 다양한 일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 주부에게 본케나 부케, 또는 N잡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나 또한 이러한 발상이 착각이 아닌 사실처럼 주장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만 해도 나에게 부캐를 자신 있게 끄집어낼 진짜 직업의 본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급료를 받고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활동이다. 이 의미에 합당할 만큼 생활 유지를 위한 급료를 나는 받지 못하고 있다. 적성과 능력에 대해서도 확고한 자신감이 없다. 그나마 가장 길게 지속되고 있는 주부라는 위치가 이 고민 앞에서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러한 의문이 성립한다면 주부의 일을 적성에 맞아서 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지속적인 생활의 안녕을 위해 노력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직장인처럼 주부도 노력으로 능력을 발휘하며 가족의 지속적인 안녕을 지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급료에 대한 누군가의 날카로운 질문이 있을 것 같다. 주부라는 자리를 돈과 연결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전업주부를 당당하게 본케로 등록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한다면 ‘관습처럼 자리 잡은 전업주부에 대한 이미지에 조금도 변화를 원하지 않으시군요.’라고 나는 정중하게 묻고 싶다.

     

언제부턴가 이혼할 때 가정주부 기여도가 인정된다고 들었다. 쉽게 말하면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가사노동의 법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내에게 노동의 대가를 정산하게 된 것을 대단한 변화라고 반문한다면 아직도 우리는 주부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숭고한 노동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물론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남편이지만 적든 많든 그 월급을 갖고 집안을 잘 꾸려간 것은 아내의 역할이다. 때론 그 돈마저 남편의 손아귀에서 나오지 못해 경제적인 모욕감을 호소하는 아내들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점점 당연시되고 있다. 지나간 시절의 추억거리가 되고 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를 경제의 휘둘림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남편들의 배려가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분야에서나 필요한 직업정신으로서의 인내와 책임감, 순발력과 창의력 그리고 소통의 문제까지 주부의 역할에도 어느 것 하나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없다. 내가 지금 하는 누군가를 위한 상담사로서의 자질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이 욕망의 힘도 주부라는 나의 본케에서 싹이 텄고 자랐으며 새로운 직업에 기저 역할을 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주부라는 캐릭터에  머물며 잊고 있었지만 MZ새 대들 이 만들어낸 기발하고 희망적인 부케의 의미를 알아차리며 나를 다시 정리하게 했다.

내가 처음 선택한 주부라는 나의 진정한 본 캐릭터가 있기에 심리상담사나 앞으로 이루고 싶은 작가라는 타이틀은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이며 그동안 노력으로 얻은 성취에 대한 확인의 아이콘, 부케가 될 것이다.

나의 직업은 주부이고 나의 가장 안전한 직장은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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