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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없는 이상한 나라?

by 새벽별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은 여전히 덴마크 방문을 손꼽아 기다린다. 방학마다 학원 일정으로 바쁜 한국의 또래들과는 달리, 딸은 어릴 적부터 매년 여름 덴마크를 찾아 다양한 경험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그곳에서, 딸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많다고 했다.


아이는 덴마크 시골집에서 풍경화를 그리고, 케이크를 굽고, 소에게 여물을 주고, 너그러운 이웃 덕에 말을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포클레인 기사가 되어 땅을 파고, 금속탐지기로 동전을 찾아 고고학자의 인내심과 발견의 기쁨도 누렸다. 카메라를 들고 들판을 누비고, 할머니에게 배운 뜨개질로 목도리를 만들기도 했다.


딸은 더운 여름날에, 시골집 앞에 작은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열었다. 손님은 할머니와 그녀의 친구 단 두 명. 딱 두 잔이 팔렸다.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또 어느 새벽엔 낚시꾼이 되어 부지런히 물고기를 잡으려 하다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작은 시골 마을, 대부분이 어르신인 그곳에서 딸은 단 한 번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가끔 시어머니의 친구가 손녀딸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둘은 동갑이었다. 정원에서 맨발로 텀블링을 하거나, 카드게임을 하며 곧잘 어울렸다.


자랑하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소소한 경험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 대부분이 인위적인 계획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환경 속 경험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걱정도 커졌다. 방학 내내 놀기만 하는 아이를 보고 불안하지 않은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덴마크에서의 이러한 여유가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유로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는 학원이 없다. 나 역시 학원 강사로 일했던 적이 있어서, 처음엔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학교 근처 건물이 학원 간판으로 도배되는 한국과는 달리, 덴마크 시내 어디를 봐도 학원을 찾을 수 없다. 시골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코펜하겐 같은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물론 성인을 위한 취미나 언어 수업은 있지만, 시험이나 성적을 위한 학원은 거의 없다.


덴마크 교육은 자율성과 균형을 중시한다. 그래서 경쟁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수업은 자유로운 토론 중심이고, 시험보다는 프로젝트 기반의 학습을 지향한다. 그러니 방과 후에는 학원 대신, 주로 친구들과 놀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그림이나 악기를 배우고 싶으면, 학교가 끝난 뒤 지역 공공기관을 이용하거나, 개인교사에게 배우면 된다. 학교는 ‘잘하는’ 아이들보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더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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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시내의 초등학교와 주변, 학원이 없다>


하루 종일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아이들은 여전히 원하는 직업을 갖고, 그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는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코펜하겐 시청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친구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공무원으로 채용되었다. 그가 대학을 들어가려고, 쫓기듯 학원에 다니면서 밤새도록 공부했을까? 공무원이 되려고, 오랜 시간을 고시원과 학원을 오가면서 준비했을까? 아니다. 물론 그 친구도 나름 노력한 부분이 있지만, 한국의 방식과는 달랐다.


시누이의 친구 중 한 명은 교회의 공원묘지를 관리하며, 주말에는 보트를 타고 인근 강을 유람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누린다. 시부모님은 런던에서 박사를 마친 남편이, 시골로 돌아와 근무하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이 부럽고, 솔직히 질투도 난다.


‘다들 한국 사람처럼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잘 사는 걸까?’


덴마크에서는 공부를 위한 공부보다는 관심사에 몰입하고, 경쟁보다 협력을 먼저 익히며, 성취보다는 일상의 만족을 소중히 여긴다. 또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탄탄한 사회복지 제도가 지탱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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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말한다.


“덴마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어떤 철학적 명문보다 마음에 오래 남는다.


덴마크와는 교육제도와 환경이 다른 한국 사회에서, 학원의 존재는 어쩌면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또 완벽한 제도는 없기에, 덴마크 교육방식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식 극한 경쟁 시스템과 비교하면, 분명 본받을 점이 있다.


처음에 ‘학원이 없는 이상한 나라’로 보였던 덴마크가, 이제는 ‘학원이 없는 이상적인 나라’로 보이기까지, 한국 엄마로서 느끼는 씁쓸함과 부러움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그 감정 위에 언젠가 한국도 아이들이 '느긋하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며,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작은 희망 하나를 조심스레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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