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골집의 코모레비와 '바닷소리'

by 새벽별

덴마크 시골집에서 고요한 아침을 맞이했다. 이른 새벽, 남편과 딸은 낚시를 하러 갔다. 긴 여정에 피곤할 법도 한데, 낚시에 대한 열정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침 식사 후, 시어머니는 허리 치료차 인근 독일로 침을 맞으러 갔다. 삐끗했던 시어머니의 허리가 침을 맞고 많이 좋아졌다. 이 조용한 시골에도 동양의학이 닿아 있다니, 참 신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시아버지는 옆동네에서 열리는 시니어 볼링 대회에 참가하러 떠났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에 가끔씩 이렇게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방이 정원으로 둘러싸인 선룸으로 향한다. 강아지 루나도 따라온다. 숲이 가까운 시골집 정원은 높고 푸른 나무들로 에워싸여 있다. 구름이 듬성듬성 낀 맑은 하늘 아래로 바람이 불어오고,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어 유리문을 열고 잠시 밖으로 나간다.


여름이지만 아침 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정원 한가운데 서니,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사이로 스치는 나뭇잎들의 ‘사각사각’ 소리는 점점 '쏴아쏴아'하는 소리로 바뀌어 간다. 자연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시골집 아침 정원에서 바라본 코모레비>


아, 그리고 푸른 나뭇잎들 틈새로 밝고 하얀 빛줄기가 새어 나온다. 바로, 코모레비다! 작년에 인상 깊게 본 힐링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화장실 청소부인 주인공이 구형 카메라로 공원에서 코모레비를 찍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도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든다. 해가 구름에 가리면 코모레비는 살짝 사라졌다가 구름이 지나가면 다시 돌아온다. 눈이 부시지만,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오늘은 코모레비와 함께 바람결에 살랑살랑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까지 곁들여졌다. 깊게 숨을 들이켜니, 나 자신이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다. 문득 '코모레비'처럼 이런 현상을 담아내는 덴마크 단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마침 시어머니가 침을 맞고 돌아왔다. 25개의 침을 맞느라 허리가 따갑고 아파서 고생하셨단다. 나는 정원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며, 혹시 그 상황에 걸맞은 단어가 있는지 여쭈었다.


"그런 소리를 파도가 만들어내는 '바닷소리'라고 하지."


원하던 답은 아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람소리는 제주에서 듣던 파도소리를 닮았다. 모습은 달라도 같은 소리를 내다니 참 신기했다. 시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유모차에 태우고 숲으로 갔지. 숲 한가운데 그루터기에 앉아 있으면, 그 소리가 들렸어. 아이들은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고, 바람에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바닷소리 같았어. 꼭 하늘에 있는 기분처럼 내 마음도 평화로워졌지."


숲에서 듣는 바닷소리라니. 시어머니의 '휘겔리'했던 그날은 꼭 그녀의 '퍼펙트 데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친정엄마가 아기 때 불러주던 '섬집 아기'의 가사가 떠올랐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남편이 어렸을 때, 그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치니, 그 '바닷소리'가 더 특별하게 들리는 듯했다.


점심이 되기 전에, 낚시를 갔던 딸과 남편이 송어 한 마리랑 돌아왔다. 실망보다는 빈손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점심 후에는 시아버지가 백포도주 한 병을 들고 도착했다. 볼링대회 참여 기념으로 받았단다. 저녁 메뉴가 정해질 것 같다.


코모레비가 소소한 순간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비추듯, 이 시골집엔 늘 그 빛과 바람소리가 머물러 있던 것 같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나뭇잎의 바닷소리, 그 틈으로 쏟아지는 코모레비, 그리고 가족들과의 조금은 특별한 하루. 그 모든 것이 오늘, 나의 ‘퍼펙트 데이’였다.


<코모레비와 '바닷소리'>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2화학원이 없는 이상한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