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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의 오래된 아파트, 그리고 문지방

by 새벽별

시댁이 있는 이 시골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 남편의 어린 시절 친구 대부분도 수도인 코펜하겐으로, 또는 다른 도시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한국의 시골처럼, 아마도 일자리의 부족과 단조로운 일상이 원인일 것이다.


이 시골에 휴가차 방문해서 몇 주 머무는 것과, 터전을 잡고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덴마크의 평온한 시골은 매력적이고 시댁 식구들과 나누는 시간도 즐겁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은근히 스며드는 따분함을 피할 수는 없다. 내 집처럼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잠시 시골을 떠나, 코펜하겐에 머물러 보기로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딸을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하고,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벼룩시장과 빈티지숍을 돌러보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는 남쪽 시골에서 수도까지는 차로 세 시간 반쯤 걸린다.


3박 4일 일정으로 머물 곳을 찾던 중, 남편 친구의 어머니가 기꺼이 본인의 아파트를 내어주겠다고 했다. 사적인 공간을 선뜻 내어준 그분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에 망설여졌다. 하지만, 남편은 그 친구가 시골에 올 때마다, 어머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니 괜찮다며, 결국 그 아파트에서 머물기로 했다.


우리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태어난 오덴세가 있는 퓐 섬과 코펜하겐이 있는 셸란 섬을 연결하는 스토레벨트(Storebælt) 현수교를 달렸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아파트는, 덴마크 국기 모양의 창문에 붉은 벽돌과 지붕을 한 6층짜리 건물이었다. 한국의 고층 아파트 숲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코펜하겐의 저층 아파트의 풍경이다. 외관은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지만, 친구 말로는 100년이나 된 건물이라 했다. 말 그대로 앤틱 아파트였다. 그 내부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두 섬을 잇는 현수교를 지나 코펜하겐으로 가는 길 >


열쇠로 1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단이 에워싼 중앙에 반투명 유리문이 보였다. 언뜻 현관처럼 보였지만, 작은 엘리베이터였다. 코펜하겐의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많다는데, 이곳은 주로 어르신들이 거주하다 보니 나중에 소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듯했다. 나는 푸른색 계단에 발을 디디며, 고풍스러운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탄 남편과 딸은 먼저 도착해 5층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다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짝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은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화이트 톤의 내부는 넓은 거실을 중심으로 큰 방과 작은 방 하나씩, 그리고 길고 좁은 주방과 화장실로 구성된 20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특이하게도 거실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 집안 곳곳에는 이 집의 주인이 손주 넷의 할머니라는 걸 보여주듯, 아이들의 사진과 그들의 '예술작품'이 정겹게 걸려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계피색의 오래된 코너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작은 석상과 낡은 항아리가 놓여 있었고, 문 위쪽에는 '1968'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시간이 놓고 가버린 표식 같은 장. 친구 어머니가 결혼할 당시 들여온 혼수품일까? 그 장을 보니, 문득 친정엄마가 혼수로 해 왔던 밤색 장롱이 떠올랐다. 학과 난초 무늬가 자개로 정성스레 박힌 장롱은, 이제 오래된 사진 속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앙 거실의 작은 새시문은 발코니로 이어지고, 그 너머로 아파트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이 보였다. 벤치에는 입주민들이 앉아 차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파트에는 구석구석 낡고 오래된 것들 틈에서도 현대적인 것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다.


100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이 아파트는 튼튼하게 지어졌다. 다만, 다소 불편했던 것은 방과 방 사이를 잇는 문지방이었다. 문지방이 없는 요즘 집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자꾸 발이 걸리는 것이었다. 넘어질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 거추장스러운 문지방은 오래된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린 시절 시골집의 문지방은 더 높았다.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 조부모님은 "복이 달아난다"며 혼내시곤 했다. 미신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칠까 염려되어 하신 말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파트의 문지방은 옛집보다 훨씬 낮았지만, 그 존재를 상기하면서 조심스레 건너려고 애썼다.


문지방을 흔히 공간과 공간을 나누는 경계라 한다. 산 사람의 이승과 죽은 사람의 저승처럼. 하지만, 발이 걸릴 때마다 옛 생각에 젖어드는 내게, 문지방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마치 남쪽 시골에서 코펜하겐을 향하며 지나온 퓐 섬과 셸란 섬 사이의 현수교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 문지방은 내게 경계가 아닌 시간을 건너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문턱이 닳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파트를 스쳐 지나갔을까? 그들의 기쁨과 슬픔이 이 문지방에 고요히 스며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시간이 머물렀던 이 낡은 아파트의 문지방에, 나 또한 과거의 추억을 기억하며 조심스레 발자국 하나를 얹어 놓는다.


먼 훗날, 이 오래된 아파트에 머무는 누군가가 이 문지방을 지날 때, 과거와 현재를 오간 내 발자국 위에, 그의 발자국도 조용히 얹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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