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이 드리운, 조금은 흐린 여름날이었다. 시아버지 해닝의 팔순 잔치가 열린 날이다. 본래 시아버지의 생신은 5월이지만, 우리 가족이 덴마크에 머무는 여름에 맞춰 일부러 날짜를 미뤄주셨다. 그래서 덴마크 생일의 전통인, 국기 단네브로는 게양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근처에 파티홀과 음식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날짜가 왜 하필 목요일인지 여쭈니, 그 주 금요일부터 예약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쉰 명이 갓 넘는 손님 대부분이 은퇴자(pensioner)들이니 평일 낮에도 파티 참석이 가능했다.
파티는 오전 11시 반에 시작되었지만, 손님맞이 준비와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답례품을 놓기 위해, 우리는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10년 전 시부모님 칠순 때도 찾았던 연회장이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실내는 양초와 작은 화분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어, 덴마크 특유의 아늑한 절제미가 돋보였다. 연두색 콘셉트로 단조롭게 세팅된 테이블 위에 선물로 가져온 알록달록한 복주머니를 놓으니, 예쁜 포인트가 되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응접실에서 속속히 도착하는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선물과 축의금을 받았다. 시어머니와 나는 음식과 테이블 세팅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제빵사 자격증이 있는 시누이는 디저트로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자, 사람들은 파티룸으로 옮겨 자리 배치도를 보고 각자의 이름이 적힌 자리에 앉았다. 시어머니가 하객들의 친밀도를 고려해서 정성껏 만든 자리 배치도였다.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니 무척 반가웠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편 사촌들은 하루 휴가를 받아 왔고,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오지 못했다. 췌장암을 앓고 있는 외삼촌의 수척해진 모습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항상 유쾌하고 유머가 넘쳤던 분이라 함께 웃었던 기억이 많았는데, 안타까웠다. 그래도 회복 중이시라니 다행이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란다.
하객들을 보니, 문득 20여 년 전 열렸던 시아버지의 환갑잔치가 떠올랐다. 그때는 손님도 두 배 이상이었고, 시어머니가 자리배치에 특별히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이혼한 부부를 같은 테이블에 앉혔다가는 싸움이 나서, 시어머니는 그들을 멀리 떼어 놓아야 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포크 댄스와 왈츠를 추고 흥겹게 노래도 불렀다. 시아버지는 부끄럼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 춤을 청해주곤 했다. 실내에서도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연회장은 연기로 가득 찼지만, 그마저도 정겨운 추억으로 남았다.
"딩딩딩딩~"
와인잔을 포크로 두드리는 소리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시아버지의 환영사가 이어졌고, 이내 새우를 곁들인 오픈 샌드위치와 와인이 스타터로 서빙되었다. 그리고는 시어머니가 노래 부를 책의 쪽수를 불러 주었다. 마치 교회의 성가집처럼 두꺼운 책에는 600여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연로한 피아노 연주자를 도와 딸과 함께 노래책 수십 권을 파티장으로 옮길 때, 딸이 말했다.
"요즘은 핸드폰에 다 나와 있을 텐데, 저 할머니는 힘들게 이걸 다 들고 다니시네요."
이곳 사람들에겐 이런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더 익숙하고 편할 것이다. 시부모님 세대가 어릴 적부터 배운 노래라, 대부분 하객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 나와 딸만 조용히 감상했다. 가사를 훑어보니, 자연 특히 여름과 사랑을 읊은 노래가 많았다
노래가 끝나고 본격적인 점심 식사가 시작되었다. 다양한 샐러드와 감자요리, 돼지고기와 소고기, 햄으로 구성된 뷔페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촌은 예전에 목수였다가, 지금은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여왕 근위대로 복무하면서, 군인이 체질에 잘 맞아 계속 그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사촌은 물류 회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시골 경찰관이 되었는데 아주 만족해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가 시스템 덕분이다. 단 시골 경찰관이라고 해도 편하진 않다고 했다. 강력범죄보다는 우울증으로 인한 중독 문제로 경찰서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복지국가의 그늘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딩딩딩딩"
식사가 끝나고 누군가 일어나 선곡을 했다. 잔잔하고 조용한 곡들이 몇 곳 이어졌고, 외숙모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 노래. 알지?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너희도 부를 수 있을 거야."
덴마크어를 잘 못하는 우리 모녀를 배려해서, 일부러 영어 노래를 선택해 준 것이었다. 딸은 처음 듣는 곡이라 했지만, 나는 어릴 적 호주 드라마 <비밀의 계곡>을 통해 익숙한 곡이었다. 호주 민요 'Waltzing Maltilda'였다. 한국어로 개사한 이 노래를 기억하는 세대도 있을 것이다.
"가파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친구들
내 노랫소리를 들어라"
경쾌한 멜로디와 달리, 원곡의 가사는 떠돌이 노동자의 외롭고 슬픈 이야기이다. 제목의 '마틸다'도 여성이 아닌, 떠돌이의 '봇짐'이라고 한다.
푸짐한 식사가 끝난 후에는 디저트 시간이 되었다. 타냐의 디저트 솜씨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새콤달콤한 케이크의 맛이 환상적이었다. 실력이 좋은데도 제빵사보다는 다른 직업을 선택한 시누이. 그래도 이날만큼은 시아버지께 큰 선물을 드린 셈이었다.
생신잔치를 즐기는 덴마크 사람들을 보니, '남덴마크 커피 테이블'이 연상되었다(브런치북 4회 참조). 나라를 잃어버린 당시에, '덴마크 사람들은 커피와 케이크만 허락된 회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노래하면서 조국을 잃은 슬픔을 달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5시가 되어갈 무렵, 파티는 마무리되었다. 하루를 온전히 파티에 쏟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아버지께 조심스레 여쭈었다.
“오늘 파티, 마음에 드셨어요? 뭐가 가장 좋으셨어요?”
친구들의 축하 인사와 선물, 맛있는 음식, 무사히 끝난 진행... 예상 가능한 답변들을 생각하며 기다리던 중, 시아버지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너희들이 파티에 와 준 것. 그게 최고였지.”
그 말에 마음이 찡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정작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Waltzing Matilda' 속의 떠돌이 사내처럼,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인생을 걸어오신 시아버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지만, 환갑과 칠순 때처럼 부디 구순 잔치 때도 우리 모두와 왈츠를 출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