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전 여왕, 마르그레테 2세 이야기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남편의 누나 타냐는 집 근처 숲에서 말을 타며 산책하고 있었다. 고요한 숲길에서 말발굽 소리만 들리던 그때, 타냐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걸어 나온 듯한 아름다운 커플이,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산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기에, 타냐는 "하이(Hej)!" 하며 인사를 했다. 숲에서 만난 낯선 아시아 여성이라 그랬을까? 그들은 당황해하다 이내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사실, 커플 중 여성도 동양적 이미지를 간직한 혼혈 여성 같아 보였다고 한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치던 순간, 타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남자가 꼭 요아킴(Prince Joachim) 왕자를 닮았네."
며칠이 지나고, 그 장면은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몇 달 후, 덴마크 국민은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된다. 연애 소문조차 없었던,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II) 여왕의 차남, 요아킴 왕자의 약혼 발표 때문이었다. 상대는 왕자가 홍콩에서 근무할 때 만난 알렉산드라 맨리라는 여성이었다. 타냐가 숲에서 본 바로 그 커플이었던 것이다. 당황했던 그들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남편은 그 일에 대해 가끔 이렇게 농담하곤 했다.
"그때 타냐가 커플의 사진을 찍어 언론사에 제보했더라면, 큰돈을 벌었을 거야."
사생활을 존중하는 덴마크 사람들이기에, 물론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1995년, 그 '숲 속의 커플'은 국민의 축복 속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오랜만에 찾아온 왕실의 경사에 덴마크인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정말 동화의 나라에서나 들을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아시아와 유럽계 혼혈인 알렉산드라는,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으로 자선활동에도 열정적이었다. 무엇보다 그 어렵다는 덴마크어를 몇 달만 배워,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삶은 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어릴 적, 나는 군주제가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21세기 유럽에 입헌군주제가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꽤 놀랐다.
나는 군주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중요히 여기는 데다, 태생이나 결혼으로 갖게 된 특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판적 시선과는 별개로, 화려하고 특별한 그들의 삶에 호기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 덴마크인들은 왕실을 어떻게 바라볼까? 일부는 세금 낭비라며 폐지를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왕실을 덴마크의 상징으로 여기며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
시부모님과 시골 이웃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왕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왕실의 뉴스를 이웃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좋은 일에는 기뻐하고 나쁜 소식에는 안타까워한다. 왕가의 성이 근처에 있어, 실제로 왕족이 머무는 경우도 있으니 정말 '이웃'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덴마크 왕실이 크게 사랑받는 데에는, 그들의 소탈한 행보가 한몫한다.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은 화가이자 의상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기도 한다. 경호원 없이 시내를 걷고, 손주 선물을 직접 고르는 소탈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요아킴 왕자 부부는 결혼 후, 이 시골 성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 세례식도 시골 교회에서 치렀고, 자식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동네 유치원에 보냈다. 국민 속에 스며들어 왕족의 특별함을 내세우지 않고 평범히 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의 왕실은 동화처럼 '해피엔딩'만은 아니다. 여왕의 장남인 프레드릭 왕자가 호주인 메리 도날드슨과 결혼하던 그 해에(그들의 이야기도 한 편의 동화 같다), 그 '숲 속의 커플'은 결국 별거하고 이듬해에 이혼했다. 거의 160년 만에 일어난 왕실의 이혼 소식에 많은 덴마크인들이 놀랐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이혼의 모습마저 인간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랑을 받는 왕실도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과도한 특권, 스캔들, 왕실 유지 비용에 대한 논란 등이 있다. '왕실 폐지론'이라는 위태로운 운명을 감지한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왕실의 규모를 축소하기도 했다.
마르그레테 2세도 그런 시대의 흐름에 대처해, 2022년에 왕실의 간소화를 단행했다. 차남의 자녀들에게 부여했던 '왕자'와 '공주'라는 직위를 '백작'과 '여백작'으로 바꿨다. 이에 서민적 모습을 보여주던 요아킴 왕자는 강하게 반발했고, 이미 재혼한 그는 가족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마치 오랜 세월 숲 속에서 잠들었던 공주가 눈을 뜬 것처럼, 덴마크 왕실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를 선택해 왔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늘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 했던 여왕의 지혜와 진심이 있었다.
최장수 군주였던 여왕은 몇 해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되었다. 건강상 이유로 2024년에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지금은 건강을 돌보며 소박한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다. 잠자던 숲 속의 왕실을 깨우고 시대의 흐름을 이끌었던 여왕. 비록 왕좌에서 물러났지만, 그녀를 향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은 여전히 깊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나에게, 마치 동화 속 나라의 마지막 장면인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출처:
커버 사진: https://people.com/royals/all-about-denmark-royal-family-tree/
여왕 사진 https://www.newmyroyals.com/2019/08/queen-margrethe-visited-wednesday.html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ra, _Countess_of_Frederiks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