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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Dec 10. 2024

물고기와 호모 사케르(Homo Sacer)

제주도 시골 살기 16

11월 말, 제주도의 최남단에서는 해양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는 총 나흘간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날에 처음으로 구경하러 갔다. 주말에다가 맑고 포근한 날씨 덕분인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조용했던 어촌 마을에 활기가 넘쳐났다. 매년 15~2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고 하니, 제주도에서 꽤나 큰 축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광장을 중심으로 양옆에 나란히 줄지어 선 천막에서는 해산물 위주의 다양한 먹거리가 판매되고 있었다. 특히 방어 회와 숯불로 구운 방어 머리는 축제 특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한쪽에서는 추억의 간식인 번데기, 다슬기, 구운밤을 파는 트럭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그리고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떡볶이, 어묵, 튀김, 핫도그 부스도 활기를 더했다. 안전을 위해 간이 의료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다.




해양축제인 만큼, 바다 관련 체험 행사가 주를 이루었다. 가두리 방어 낚시 체험, 방어경매 체험, 방어요리 시식 코너, 어시장 경매 등이 다채롭게 마련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행사는 단연코 '방어 맨손 잡기' 체험이었다. 약 20여 명의 체험 참가자들은 가슴 장화를 신고 면장갑을 끼고 네모 모양의 수조 안으로 들어갔다. 수조 안에는 참가자 수보다 약간 많은 25마리 정도의 방어가 풀려 있었다.

 

행사 진행자는 방어를 잡을 때, 쫓지 말고 코너 쪽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쉽게 잡을 수 있다는 팁을 알려주고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신호가 떨어지자 참가자들은 우왕좌왕 물고기를 쫓기 시작했다. 잡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관람객들에게 흥미진진한 광경이었다. 누군가 방어를 잡을 때마다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던 중, 너무 욕심을 부린 참가자는 물속으로 미끄러져 그대로 입수하고 말았다. 관람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사실 물고기 맨손 잡기 체험은 물고기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한다. 큰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방어들은 이 비좁은 수조에 갇혀, 사람들에게 내몰리며 잡힐 때까지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도망쳐야 한다. 인간에게는 단순한 즐거움일지 모르지만, 물고기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와 다름없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강원도의 산천어 축제와 같은 큰 겨울 축제에서 물고기 맨손 잡기 체험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의 큰 축제를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그런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웃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동물 생명의 윤리적인 문제를 잠시 제쳐두고, 물고기를 바라보니 이탈리아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가 떠올랐다. 호모 사케르는 '신성한 인간'이란 뜻이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나 죽여도 법적으로 살해의 책임을 지지 않으며, 희생물로도 바쳐질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즉, 인간 세계나 신의 세계 양쪽 모두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죽음조차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존재이다. 맨손 잡기 체험에서 물고기가 겪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상황'은 생명권이 무시된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축제에 참가하고 이틀이 지난 후, 계엄령이 불법적으로 선포되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계엄령이 효력을 발휘한 여섯 시간 동안 국민들은 '수조 안의 물고기'같은 호모 사케르의 처지에 놓여있던 셈이다. 지금도 우리는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의 상황에 놓여 있다. 계엄령 하에서 국가의 정상적인 법질서가 일시 정지되면, 시민의 생명은 모든 보호와 권리가 박탈당한 채, 국가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놓이고 무가치하게 취급될 테니 말이다.


생각만 해도 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인가! 계엄령 하에서는 즐거운 축제를 평온하게 즐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축제 속에서 마주한 물고기에게서 호모 사케르를 보았고, 잠시 동안 나 자신을 포함한 국민이 호모 사케르가 된 순간을 목격했다. 수조 안의 물고기처럼, 인간인 우리도 언제든지 권리와 보호를 잃을 수 있고, 죽음조차 무가치하게 여겨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자유, 권리, 생명의 소중함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진다. 좁은 수조 안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다시 돌아가려면 그 간절함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와 권리, 생명의 가치를 매 순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호모사케르: https://namu.wiki/w/%EC%A1%B0%EB%A5%B4%EC%A1%B0%20%EC%95%84%EA%B0%90%EB%B2%A4

산천어 축제: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11226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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