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작가의 오춘실의 사계절
오춘실, 촌스러운 이름의 그녀는 책 만드는 사람 김효선의 엄마다. 김효선 작가는 브런치작가이며 출판사의 MD(출판사에서 도서의 기획, 유통, 마케팅, 판매 등 상품 전반을 총괄하는 전문가)이다. 엄마는 정년퇴직을 두 달 앞두고 전깃줄에 걸려 넘어졌다. MRI 찍을 때까지도 멀쩡했던 엄마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에 가까스로 병원에 입원했고 퇴직했다. 타인의 책을 만들던 김효선 작가는 병간호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엄마와 함께 수영장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엮었다. 계절이 바뀌듯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병들었던 작가의 마음에도 볕이 들었다. 그 책의 이름은 "오춘실의 사계절"이다.
개나리꽃 같은 노란색 수영복과 수영모를 입은 엄마의 사진을 앞표지로 썼다. 화장기 전혀 없는 주름진 얼굴, 그 모습이 멋진 것은 꾸밈없는 미소와 당당함이다. 수없이 몸을 다쳤고, 마음이 무너졌던 청소 노동자의 삶을 엄마는 행복으로 버무렸다. 오춘실이라는 필터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자 밝고 따뜻한 노랑빛으로 바뀌었다. 딸은 분홍색 수영복을 입고 표지 뒷장을 장식했다. 행복해서 살맛 나는 엄마의 모습이 귀엽고 눈물 나게 아름답다. (흡사 봄날 피어난 개나리와 진달래 같다) 아름다운 에세이이다.
퇴직으로 한가해진 오춘실엄마와 김효선작가는 함께 수영장에 다니기로 했다. 김효선 작가는 물 잡는 기쁨을 엄마에게 선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의 다친 허리에도 좋은 운동이다. 그녀는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사계절을 보냈다. 엄마는 오춘실만의 방법으로 물속에서 뛰놀고 세상을 헤엄쳤고 계절을 즐겼다. 누구와도 쉽게 친밀해졌고 삶을 나누었다. 책을 쓰겠다는 말에 ‘내 이야기도 책이 되느냐’고 물었던 엄마의 삶은 수영장의 물처럼 유연했다.
김효선 작가의 엄마 오춘실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일을 했다. 열네 살에 돈을 처음으로 벌어서 동생의 책가방을 사줬고 18세 주민등록증이 나오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취직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고, 돈을 벌어서 동생의 학비를 대고 나를 희생하고 가족을 돌보았…..다는 이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슬프게도 직장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키가 작다고 봉직공장에서는 (키가 작으면 기계에 끼는 사고위험이 있어서) 받아주지 않았고, 손이 느리다고 해코지당했고 회사가 이사 갈 때 함께하는 명단에 빠졌다. 결혼하고 딸을 낳고 난 뒤에는 작가의 아빠 대신 엄마가 일을 했다. 작가의 아빠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일을 그만뒀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경마에 빠졌다. 김효선 작가는 그런 아빠가 미웠다. 가난이 부끄러웠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부끄럽고, 찜질방에서 청소하는 엄마가 부끄럽고, 전기선에 걸려 넘어져 허리를 다치는 엄마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수영장을 다니며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김효선작가는 늘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한 엄마를 만났다. 그런 엄마에게 반했다. 이젠 오춘실을 쫓아다니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오춘실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장래 희망은 자원 재생 활동가. 꿈도 닮아간다.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운 부분을 가지고 살고 있다. 우린 그것을 열등감이라고 부른다. 소위 일류대학이라고 부르는 좋은 대학과 남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 높은 직급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갖지 못한 자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감추고 또 감춘다. 좋은 옷과 비싼 가방으로 몸을 감싸고 후광효과도 노려본다. 그러나 오춘실은 그런 것들이 없어도 기죽지 않고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엄마 오춘실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견뎌낸 사람. 나의 불행을 보편적인 불행으로 승화시키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일을 잘할 수 있을 때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엄마를 보며나도 작가님도 행복해졌다.
이젠 엄마가 자랑스럽다. 함께 수영장에 가고 함께 여행하며 아픈 부분들을 서로 보듬는다. 둘이 동성 애인인 줄 알았다는 오해를 들을 만큼 엄마바라기가 되었다.
일하는 동안 우울했고,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작가님이 이제 아프지 않게 되었다니 반가웠다. 미웠던 아빠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한다. 역시 내 마음의 지옥을 만드는 것도 나인 것이다.
- 행복이 별건가요. 도마도 설탕에 재어 놨고 바람 불어 시원하고 씻어서 상쾌하면 그게 행복이지요. (163p)
- 돈이 3(삼), 상쾌함이 7(칠)이여. (217p)
나도 같이 중얼거려 본다. '행복이 별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