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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Dec 19. 2022

[D+70] 내 방식의 여행법

미국, 시애틀

내 두 번째 한 달은 어디로 갔냐며 울부짖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도 1/3이 지났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른다고 느낀다기보다는 솔직히 말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포틀랜드에서부터 '머무는 여행'을 하고 있어서지 싶다. 머무는 여행이라고 해서 뭐 거창할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빡빡한 스케줄표에 나를 욱여넣지 않는 거고, 반드시 어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도 않는 거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되고, 하기 싫은 게 있으면 안 하면 그만인 여행 방식, 이라고 나는 정의했다.


그저 전날 밤 침대 위에 누워 내일은 뭘 해볼까, 정도만 고민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지금껏 그랬듯 시애틀의 남은 날이나 다음 여행지인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시간은 그냥 닥치는 대로, 밸 꼴리는 대로 지내볼 거다. 아, 라이언 킹의 예약 실패로 맛봤던 좌절을 겪지 않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몇 가지 공연들과 그랜드캐년 투어는 준비를 했네.


그렇게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숙고 끝에, 오늘은 '모팝'(Museum of POP Culture) 구경을 목표로 집을 나선 뒤 그다음부터는 거의 발 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러다 잠시 멈춰, 주변 지도를 들여다보다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 있으면 슬쩍 가보기도 하고.


이런 방식의 내 멋대로의 여행은, 뭔가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느긋함을 가져오지만 이 도시에 대해 내가 놓치는 게 있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함께 따라온다는 게 문제다. 그럴 땐 뭐다? 아몰랑 폴더!


음악은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로비 구경만 신나게


나조차 아는 뮤지션들이니 거장이라 불리는 거겠지. 티셔츠 판매대


아티스틱한 기타 피크도 귀엽고 RM의 인형도 반갑고


모팝 바로 옆에는 시애틀의 명물, 스페이스 니들이. 하지만 찬조 출연일 뿐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갤러리 Frye Art Museum


인물 사진과 상업적 패션 사진을 찍어왔다는 다이언 알버스의 작품들. 하퍼스바자, 에스콰이어, 보그, 글래머 등 지금 봐도 잡지 편집과 사진 구도가 어쩜 저리 세련되었을까


도시 구경, 걷는 즐거움


광화문에 온 줄


시애틀 입성 나흘 만에 워터프런트 진출. 지는 해를 보며 친구와 아무 말 않고 앉아있기를 해보고 싶었으나 아무 말 안 할 거면 혼자여도 되는데??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는데 오늘은 타이밍이 크리스틴의 식사 시간과 겹쳐 함께 밥을 먹었다.


오랫동안 버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코스타리카 등에서 이민 온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쳤다는 크리스틴은 젊은 시절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영어 강사를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두 나라의 언어는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인도네시아에 있을 당시 딸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만 빡시게 일하고 그 뒤로는 내 맘대로 살겠다 독하게 마음먹고 미국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딸 애는 25살이 되었이제는 힘이 들어 돌아다니는 여행은 더이상 못하게 되었지만 대신 에어비앤비를 하면서 전 세계 여행자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게스트들 중 몇은 지금은 절친이 되어 서로의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고.


이 아줌마 보면 볼수록 명물인 게, 그랜드캐년 투어 얘기가 나오자 유튜브로 이거 저거 찾아보더니 나에게 추천하는 투어라는 게 죄다 스카이다이빙 체험, 열기구 투어다. 나이가 60을 넘겼는데도 여름엔 카약을 타러다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미국 전통 댄스를 배우러 다니는 분이시니 나 같은 인도어 체질에겐 너무나 벅찬 아줌마.


내가 디저트로 청포도를 씻어와 좀 먹어보라 하자, 자긴 1970년대 이후로 청포도를 안 먹는다고. 뭔 일인가 했더니 당시에 포도 농장 일꾼들이 작업환경 때문에 파업을 했는데 자기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청포도를 안 사 먹는 것이었다나. 이 귀여운 아줌마를 우짜지??!


가을 타는 남자, 윈스턴


그림일기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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