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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12. 2023

[D+82] 동업자 찾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코라 아줌마는 정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에어비앤비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원래 '카우치 서핑'을 오래 했었다고 한다. 주로 돈 없는 학생들(한국애들도 포함)이 방문을 했었고 짠한 마음에 엄마처럼 케어해 줬었다고. 내 방 건너 또 하나의 게스트 방에는 벽면이 온통, 코라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도착 첫날 얘기한 거처럼 7일간 이용할 수 있는 거주민용 버스 패스를 본인 아이디로 사다 주기로 했는데 다음 날 이게 더 이상 발권이 안되더라고 연락이 왔었다. 그럼 됐다고 답을 했는데 세상에나. 15일권을 사 와선 선물이라며 돈도 안 받겠단다. 이 아줌마 우짜지?


이런 마음씀이 고맙기도 했고 첫날 그녀가 한국살이에 대한 얘기를 하며 불고기가 그립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저녁 한 끼를 한식으로 대접하겠다 했더니 어서 날짜를 잡자고 난리였다.


그래서 코라의 저녁약속이 없는 오늘, 관광객 모드는 잠시 접고 요리사 코스프레를 해보기로 했다. 


요리하는 자체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불고기쯤이야 일도 아니고 먹는 외국인도 호불호가 거의 없는 음식이 바로 불고기 아니던가. 더군다나 미국 마트엔 한국산 불고기 양념쯤 쉽게 찾으니깐 소스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엔 불고기를 빵과 함께 먹을 생각이었는데 부엌의 컨디션 체크를 하다 보니 전기밥솥이 있는 게 아닌가. 경험상 찰진 밥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서양인들이니 밥을 좀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불고기 덮밥을 해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디저트로는 마트에서 고구마를 본 순간 맛탕이 떠올랐다. 우리가 흔히 먹는 맛탕을 만들려면 기름에 튀겨야 하는데 이게 좀 번거롭기도 해서 변형을 시켜보기로 했다. 고구마를 작게 썰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어느 정도 익힌 후 설탕물에 조려버린 것. 튀김의 맛은 좀 덜하겠지만 단 거+단 거니 디저트로는 딱이다. 여기다 산딸기와 샤워크림까지 얹자 모양도 그럴싸해졌다. 


고기는 야채와 함께 재우고 밥은 고슬고슬하게


한식은 색깔의 조화가 기가 막힌다


그리하여 일사천리로 진행된 오늘의 요리 코스.


[애피타이저] 시애틀에서 다 못 먹고 들고 온 클램차우더(통조림)


[메인] 밥과 함께 비벼먹기 좋게 살짝 국물이 있는 불고기덮밥


[디저트] 설탕에 조린 고구마 맛탕과 산딸기


코라 아줌마와 나는 밥을 두 공기나 먹고 배가 찢어질 것 같다며 둘 다 힘겹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요리를 계획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내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행을 왔다면서 관광은 어딘가로 집어던져버리고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런 시간을 보낸 것이 퍽이나 즐거웠다.  


문득 투어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랜드 캐년 쪽에 누가 곰탕집 하나 차리면 대박이 날 거라고. 


19시간 투어 동안 총 세끼를 먹었는데(중간에 간식으로 컵라면을 먹기도) 샌드위치와 햄버거, 멕시코 음식들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투어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만 가는 투어가 아니니, 코스 중간 어디쯤에 한식당만 있다면 거의 독점이 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말씀하셨었다.


여름엔 곰탕으로 빠짝 땡기고 겨울엔 슬롯머신으로 빠짝 땡기는 인생? 나쁘지 않아... 


동업자 찾습니다~


아침시간엔 풀장 옆에서 색칠공부 삼매경. 까치집이 된 머리 좀 보소


뒹굴뒹굴, 귀염뽀짝 선샤인


드디어 마음을 연 갤러님이 궁디팡팡을 원하신다


그림일기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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