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
냄새 제거제를 들이부어 닦았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세탁소까지 찾은 거랍니다. 무튼 그 이후로는 배낭이 아주 향기로워졌으니 이쯤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수하물 벨트에서 나와 상봉한 배낭을 볼 때마다 기도 안 찼다지요. 공항 바닥에서 그 많은 짐을 다 꺼내고 다시 싸는 일을 매번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니 짐을 법에 따라 좀 뒤졌는데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있어도 이해해. 법이 그래'라고 적힌 종이 쪼가리를 발견하죠. 이번엔 내 소중한 자물쇠까지 해 드셨지만 뭐 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어요. 햐아.
문제는 배낭 자체를 망가뜨린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델타 항공 데스크를 부술 뻔했습니다. 내(아니, 후원자님의) 배낭을 비행기 바퀴에 달고선 착륙을 했는지 레인커버는 기름때로 온통 시커멓게 오염됐고 그 속에 든 배낭에 빵꾸까지 난 걸 발견했죠.
인천에서 짐을 부칠 때 레인커버 지퍼가 닫히지 않아 임시로 테이프를 감아 보냈지만 그럼에도 멀쩡했던 배낭이 미국 공항 몇 번을 거치며 급기야 저리 된 것입니다. 이게 오늘이 처음이었으면 당장 델타 카운터로 달려갔을 텐데 조금씩 사람 피를 말리더니 결국 레인커버는 개판이 되고 배낭은 쓸려서 빵꾸가 나고 보조 고리는 끊어진 사태를 맞닥뜨린 거지요.
그래서 그냥 후원자님께 이실직고합니다.
이 배낭을 데리고 실크로드를 가실 예정이라고요. 저를 짐꾼 중 하나로 데리고 가주세요. 싫으세요? 그렇다면 제가 취직해서 첫 월급으로 새 배낭을 사드릴 테니, 실크로드는 그때 가시면 안 될까요?
넹? 00 오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