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비엔나
사촌언니가 피곤할 때 폭탄을 투여하듯 개수 상관없이 먹으라고 준 영양제 탓일까. 12시간을 날아와 5시간의 시차가 있는 곳에 와 있음에도 아침 7시경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한국에서라면 불면증 탓에 늘 새벽 2~3시를 넘겨야 겨우 눈을 붙이고,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다 보니 내 수면 시간은 언제나 4~5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젯밤 11시경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한 번도 깨지 않고 이 시간까지 자는 기적을 경험했다.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비비안을 배웅하고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세상에. 웃음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다. 이대로 한숨 잘까, 하다가 아직 심카드를 사야 하는 미션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늘 그렇듯 머리로 우선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여러 검색을 통해 비엔나에서 심카드를 아주 싸게 살 수 있다는 시내의 한 통신사를 찾았으니, 우선 그곳에 들러 유심칩을 끼우고 빵빵한 데이터를 이용해 근처 관광지를 검색해 보자.
왜 집에서 관광지 검색을 해보지 않냐고? 심카드가 아니었다면 집을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므로.
집에서 통신사로 가는 길은, 구글 지도 이미지를 저장해 둔 탓에 잘 찾았다. 그러나 매장 앞에서 잠시 고민. 데이터가 왜 필요하지? 어차피 이런 식으로 그날의 동선을 미리 예습하고 나서면 밖에서 인터넷 쓸 일이 없지 않나? 아예 사지 말까?
그리하야...
통신사를 지나쳐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전생에 비둘기 혹은 우편배달부였을 것 같은 나는, 돌아가는 길을 위한 빵부스러기 따위는 필요 없다. 성 스테판 성당이 근처에 있었고 매일 오후 3시에 무료로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던 성 베드로 성당도 있었다.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구경하다 잠시 집으로 턴, 점심을 먹고 정보 검색을 좀 했다.
오늘 에곤 쉴레를 볼 수 있는 미술관이 휴관인 데다 보고 싶던 클래식 공연도 정해진 요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덜컥 맘이 급해진 탓이다. 요일별로 하고 싶은 것 하나씩 정도는 정해보자.
대중교통을 일주일간 무제한으로 타는 카드를 샀으니 어디든 가보자 싶어, 다시 집을 나섰다. 유명 건축가이자 환경예술가인 '훈데르트바서'가 지은 자연친화적 공공주택이 시내를 막 벗어난 곳에 있다길래 트램을 타고 한참을 갔다. 독일어 발음이 어려워 옆사람에게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 얼마나 남았어? 하고 물으니 자기도 거기서 내릴 거니 염려 말란다. 내려할 곳 걱정 없는, 신나는 거리 구경이 시작되었다.
아무 계획이 없다는 거, 평소의 나라면 기겁을 했을 텐데 이렇게 신이 날 수도 있는 거구나. 또다시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 나온다.
* 방탄소년단 RM이 지금 비엔나에서 휴가 중이라는 첩보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