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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차 Feb 01. 2021

슬픔을 공부하다

슬픔. 그것은 가장 보편적이면서 낯선 감정이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인류의 슬픔을 고뇌하고 사색하며, 그것을 제각기 매체에 담기 위해 헌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우리의, 그리고 상대방의 슬픔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야말로 가장 공부하기 적합한 대상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어떻게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2018년의 끝자락을 붙잡고 나 자신한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2018년을 보내면서 정말 많이 바뀐 거 같다. 


좋은 기억도 무수하지만, 이 기억들은 지난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나는 삶의 발가벗음을 조금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생의 이면은 차갑고, 어둡고, 우수에 찼다. [1] 겉으로는 알록달록 물감으로 채색된 것과 달리 삶의 본질은 흑백사진과도 비슷했다. 


우리의 슬픔은 이 흑백의 독백에서 흘러나온다. 흑백이기에 색상환에서 도태되고, 독백이기에 삶의 시끄러움 속에서 음소거된다. 그러나 이 독백의 소리가 커지면 – 말하자면 우리의 슬픔이 더욱더 밝아지면 – 나의 독백은 그대의 독백을 발견하고, 그렇게 우리의 나지막한 혼잣말은 대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로마를 보고 난 후 적은 것처럼, “다채의 완성은 흑백”일지도 모른다. 


침체된 삶의 부조리함은 아름답다. 삶의 아름다움은 불완전함에 있다. 


2019년에 대한 큰 기대는 없지만, 타인의 슬픔을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이 슬픔인지라. [2]


          

[1]

 이승우, 생의 이면. 

[2]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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