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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m Jul 06. 2024

열기구를 타기 위한 4박 5일의 기다림

카파도키아 날씨와의 밀당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를 타기 위한 우리의 여정엔 비와 먹구름이 함께했다. 기후에 따라 열기구 탑승 여부가 정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기다림뿐이었다. 도착한 첫날, 온 도시에 비가 주르륵주르륵 내렸고, 이튿날 아침에도 비구름이 가시지 않아 운항이 취소되었다.


우리는 열기구 한 점 없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을 바라보며 조식을 먹고 1일 패키지 투어를 시작했다. 호텔 앞으로 온 미니버스를 타고 타운 곳곳을 돌며 손님들을 태우는 동안 괴레메 마을을 구경했다. 괴이하고 신비로운 기암괴석이 많은 곳, 이름도 지형의 괴상함을 표현하는 듯한 괴레메를 떠나 카파도키아의 곳곳의 신비로운 관광지로 떠났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900년대에 지어진 동굴 마을이었다. 이라라 골짜기(Ihlara Valley)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13세기 기독교인들이 설립한 셀리메 수도원 (Selime Monastery)이 있다. 사막을 닮은 황색 대지 위에 높고 뾰족하게 솟은 고깔 모양의 암석들이 수십, 수백 개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사는 지구에 존재하는 곳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달이나 화성에 갈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묘한 전경이었다.


셀리메 성당이 있는 고깔 암석을 등반해 올라가 수백 년 전즈음부터 살았던 사람들의 거주 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화덕을 놓았던 바닥에 둥그렇게 파인 흔적과 새까맣게 탄 천장을 보며 그 당시의 부엌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1층과 2층 벽면이 온통 아치형 기둥으로 가득한 수도원에서는 기도하고 도를 닦았던 수도승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치 기둥을 지나 어두컴컴한 통로로 들어가니 지하 창고가 나오기도 하고, 다른 통로로 가다 보니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나오기도 했다. 엄마, 아빠도 모두 아이들이 된 것처럼 고깔콘 속 세상을 누비며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주어진 30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해 해가 나왔고, 열기구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러 내려갔다.



셀리메 수도원 (Selime Monastery)




아라라 골짜기를 따라가다 도착한 다음 목적지는 길이가 15km나 되는 협곡에 있는 벨리시르마 마을 (Bellismir village)이었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었다. 하늘로 높이 뻗어있는 절벽에는 아치형 통로와 네모진 창문 같은 것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지진 때문에 벽의 일부가 허물어져 밖으로 노출된 동굴 속 세상이라고 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절벽 위에 있는 13세기 커크다말티 교회(Kirkdamalti Church)로 올라갔다. 벽이 허물어져 안이 훤히 보이게 뚫려있는 교회 바닥은 묫자리로 가득했다. 가로 폭이 3-4m, 세로 6-7m 정도 되는 공간에 스무 개가 넘는 관이 들어가는 자리가 촘촘히 파여 있었다.


그 옆과 위의 벽면은 벽화들로 가득했는데 그 위에 낙서는 물론이고 파인 흔적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굴 전체가 파인 그림들도 많았고 눈 부위만 긁힌 자국도 있었다. 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은 이랬다. 1920년대에 터키를 떠나야 했던 그리스 교인들이 예수와 마리아를 이곳에 두고 그냥 떠날 수 없어서 그림의 눈을 파서 가져갔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이 교회를 찾은 전 세계의 많은 교인들, 그리고 도둑들이 벽화를 조금씩 훔쳐갔다고 한다. 가이드는 지금까지도 도둑질이 일어나고 있다며 최근 겪은 에피소드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가이드와 함께 동행한 손님이 벽화를 긁어서 가져가려고 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한다. 현장범으로 잡힌 사람과 함께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는 가이드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훔치려 했던 이유가 벽화 조각을 물에 타서 마시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미신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수없이 다양한 이유로 훼손되고 현재까지도 도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모든 벽화의 눈이 파인 커크다말티 교회(Kirkdamalti Church) 벽화



커크다말티 교회에서의 강렬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마지막 명소로 향했다. 열기구뿐만 아니라 지하도시로도 유명한 카파도키아의 카이마클리 지하 도시(Kaymakli Underground City)! 기원전 8-7세기에 지어진 땅 아래의 세상이다.


1층에는 음식 저장과 가축을 위한 공간이고 그 아래서부터 사람들의 거주 공간으로 구성된 지하 도시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인 채 좁은 통로로 내려가야 했다. 바로 아래층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례를 했던 교회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한 맷돌이 있어 이국적인 곳에서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 놓인 맷돌에 곡식을 넣어 갈면 그 아래 뚫린 구멍을 통해 거대한 창고로 이어져 있는 구조였다.


다음 층으로 가는 통로는 훨씬 더 좁았다. 어깨를 좁히고 무릎은 더 내려서 토끼 걸음에 가깝게 몸집을 최대한 구겨야 했다. 몇 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으려나 싶은 찰나에 도착해서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예상치 못하게 와이너리가 있었다. 허리춤까지 오는 벽으로 막힌 공간에 포도를 저장해 두고, 문턱만큼 올라온 방은 포도를 으깨는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발로 으깨서 짠 포도즙이 흘러나오는 구멍은 문턱 옆 아래에 있었다. 그 구멍 바로 아래에는 와인 세네 병 정도를 담을 수 있는 크기의 돌그릇이 있었다.


그리스 로마인의 지혜로 지하 세상에서 식초나 와인을 만들어 자급자족 했다는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형태의 거주 형태가 존재했구나를 느꼈다. 속이 가득 찬 암석을 뚫고 뚫어 미로처럼 연결하여 건설한 동굴 세상을 탐험하며 그 옛날 사람들의 창의력과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카이마클리 지하 도시(Kaymakli Underground City)



카파도키아에서는 보통 새벽에 띄워서 아침놀에 맞게 하늘에 머무르는 스케줄로 운영된다. 그래서 매일 새벽이 되어야 열기구가 뜨는지 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기상 악화로 결국 운행 취소됐고, 한 번 더 행운에 걸어보자 싶어 하루를 더 묵었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99%의 확률로 뜰 거라는 희소식을 드디어 들었다. 아직 밤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열기구 탑승 장소로 갔다. 통제실에서 그린 라이트를 켜줄 때까지 수십대의 투어 차들이 숨죽여 기다렸다. 어두컴컴했던 새벽하늘이 점차 밝아질 때까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의 희망찬 기다림은 결국 탑승 불가 판정으로 끝이 났다.


씁쓸히 떠나는 열기구 탑승 장소...


그렇게 4박 5일을 밀당하던 카파도키아! 고대하던 열기구를 타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신묘하고도 기괴한 카파도키아 암석 세계와 지하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충분했다.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또 한 번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게 된다면 그때 열기구를 타면 되지 뭐! 그런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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