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굽고 깨부숴버리는 항아리 케밥
3개월의 대장정, 그랜드 투어의 마지막 나라로 떠났다. 바로 튀르키예로! 대학교 때 이스탄불과 튀르키예에 속한 사이프러스 섬에 가본 것 외에는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 나라. 우리나라 면적의 7.8배나 되는 튀르키예에서 3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 첫 도시는 카파도키아였다. 기이하고 괴상하게 생긴 암석을 뜻하는 기암괴석의 천국으로 유명한 곳. 그 괴이한 지형 위를 둥둥 떠다니는 열기구 장관을 눈으로 보는 것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로 꼽지 않을까. 단연 우리도 그 황홀한 경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품고 도착했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괴레메라는 타운에 우리는 어두컴컴해진 저녁 늦게 도착했다. 곳곳에 전등으로 비춘 암석들이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숙소 로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튀르키예 전통 천장등의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우리를 맞았다.
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475년이 넘은 식당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편에 60도 각도로 눕혀져 있는 유리문이 있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직원이 웃으며 나타나 문을 활짝 열어줬다. 서늘한 기운이 얼굴에 닿았고 계단 아래를 보니 음식 저장 창고로 사용 중인 동굴이었다. 감자, 고추, 토마토가 박스채 쌓여 있고 한편에는 음료수 캔들이 층층이 놓여있었다. 오래된 집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변신시킨 레스토랑은 입구부터 놀라움을 선사했다.
주홍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통로를 지나 반층 아래로 내려가자 바닥에는 알라딘 양탄자 같은 카펫, 나무 좌식 의자 위엔 형형색색의 쿠션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다양한 색과 질감의 패브릭 아트가 걸려 화려함을 더했다. 각 테이블마다 있는 6가지의 향신료통까지 튀르키예의 매력과 원색을 생생하게 표현한 인테리어 센스에 감탄하며 자리에 앉았다.
카파도키아에서 유명하다는 항아리 케밥을 시키고 민트, 수막, 오레가노, 파프리카 등 향신료 맛을 보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곧이어 불에 뜨겁게 달궈진 돌솥 그릇이 나오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장독모양의 항아리가 도착했다. 항아리 윗부분은 밀가루반죽 같은 걸로 덮었는지 화덕 안에서 검게 탔고 몸뚱이는 연한 갈색빛이었다.
직원은 노란 행주로 검은 항아리 머리 부분을 잡고 망치를 꺼내 들어 목보다 조금 아래 몸통 부위를 톡톡 쳤다. 정확히 세 번의 절제된 망치질에 목이 '똑'하고 떨어져 열렸다. 다시 천으로 불처럼 뜨거운 항아리를 집어 돌솥 그릇에 내용물을 붓자 지글지글 끓었다. 보글보글, 자박자박한 케밥 향이 진동했다.
목이 잘린 이 항아리들은 어떤 운명을 맞는지 물어보니 깨부수고 다시 쓰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 가져와 기념으로 두고 싶을 정도로 봉긋하니 이쁘던데. 그렇게 운명을 다한 거라니 놀랍고 안타까웠다. 여긴 도자기가 너무 흔해서 그런 거란다. 여기선 도자기가 플라스틱과 같구나 생각했다.
소스는 살짝 달콤하면서 토마토와 파프리카의 새콤함에 고기의 기름진 맛이 어우러져 깔끔하면서도 깊고, 매콤한 맛이 취향을 저격했다. 닭고기와 소고기, 두 가지 케밥을 시켰는데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항아리 속에서 조리한 거라 육즙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향신료를 조금씩 추가해 한입한입 맛보는 재미도 빼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빠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건 밥이 나왔다는 사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에게 아주 정이 가는 튀르키예의 밥 문화에 아빠는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해했다.
끝으로 최고의 피날레를 장식한 튀르키예의 바클라바 디저트. 크리스피 한 노란 밀가루 반죽 안을 가득 채운 꾸덕한 시럽과 고소한 피스타치오가 달콤함의 극치에 달할 때, 뜨거운 터키식 차 한 모금으로 말끔하게 잡아주는 환상의 엔딩 파트너였다.
카파도키아에서 꿈에 그리던 열기구를 탈 날을 기대하며 첫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