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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Before&After

뉴욕의 일상, 존 프렌치 슬로안(John French Sloan)

 

털 딸'레아'와 '바람'이를 데리고 새해 첫날 이른 산책을 나갔습니다. 오르막 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반대편 차선에  차 한 대가 노란 선 안전지대 라인으로 급하게 들어서며 멈춥니다. 6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백인 남성이 묻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이 키우던 3살짜리 골든 리트리버가 사라졌다며 혹시 올라오는 산책길에 보았는 지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헉' 이걸 어쩝니까? 고개를 저어야 하는데 좀 망설여지더군요. 미아 찾듯 자신의 반려견을 일찍부터 찾아 나선 그분의 다급한 마음이 먼저 보여서 말이죠. 연말 들뜬 분위기에 이곳저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흥청이는 소리에 생명체 하나가 놀라 집을 뛰쳐나간 모양입니다. 소리에 예민한 개들이 큰 행사나 축제 뒤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날 그들을  찾기 위해 습관처럼 전단지가 붙기도 하고요.




올라왔던 산책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는 내리막길, 노년의 할아버지 한 분이 반대편에 서있는 저와 개들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어 보이십니다. 일면식도 없는 데 개를 키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활짝 웃으며 서로를 향한 경계를 풉니다. 저 역시 손을 흔들어 보이며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목줄에 함께 나이 들어가는 개 한 마리가 반대편에 서 있는 동족을 빤히 쳐다보고 있고요. 언뜻 보기에 견주와 나이 든 개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보폭을 옮기고 있는 뒷모습이  저를 한참 동안 서 있게 하더군요. 노인과 나이 든 개 사이에 깊은 연대감이 느껴져서 말이죠.




기껏해야 30분 정도의 차이인데... 오르막길에서 만난 그분과 내리막 길에 만난 저분의 오늘 하루가 끝에서 끝을 향하고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예상치 않은 일로 새해 첫날부터 삐걱 거리는 일상을  시작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부디 잃어버린 반려견을 오늘 안으로 찾았으면 하는 생각과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만날 희망이  점점 줄어들 거라는 생각에 체한 느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슈슈슝 ~~



#(9월-2023년/자유 여신상 주변, 저지 시티)




20세기 첫 10년 동안
뉴욕시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삶을 그린
애쉬 캔 학교(Ashcan School)의 최고 예술가




뉴욕 하면 '대도시의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를 먼저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 도시인들의 외로움과 고독이 잘 표현되어 있지요.  존 프렌치 슬론(John French Sloan,1871-1951)은 에드워드 호퍼보다 11년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뼛 속까지 뉴요커였던 호퍼와 달리 그는 펜실베이니아 록 헤이븐 출신입니다. 20세기 초 뉴욕의 일상을 잘 잡아낸 화가이고요. 그의 손끝에서 그려진 사람냄새나는 뉴요커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겁니다. 




  16살에  부모와 자매들의 부양을 책임지기 위해 서점이자 작은 인쇄물을 판매하는 Porter and Coates에서 계산원 보조로 사회 첫 발을 내딛습니다. 각종 연하장, 달력 디자인과 일러스트, 그리고 에칭 작업으로 예술세계에 입문하게 되고요.


1892-1895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

1895-1910 [필라델피아 프레스(The Philadelphia Press)]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The Philadelphia Inquirer)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지역을 담당하는 아침 일간신문입니다. 이 신문사는 1829년 6월 존 R. 워커와 존 노벨이 <펜실베이니아 인콰이어리>란 이름으로 창간하였고, 미국 내에서 세 번째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일간신문이기도 합니다. 미국 내에서 10번째로 가장 많은 주간 발매량을 가지고 있고요. 퓰리처상을 20번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미국의 신문 언론,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놓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주는 상





존 슬론은 1904년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로버트 헨리, 조지 룩수, 아서 B. 데이비스 등과 함께 8인이 주축이 된 '에이트(The Eight)'그룹을 결성하고 미국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전개합니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미술 그룹으로 , 1908년 결성되었습니다. 기존의 예술 형식에 도전하면서 당시의 진보적인 예술 운동을 선도한 그룹이지요. 그들은 당시의 관습적인 예술 환경을 탈피하려 했습니다.  뉴욕에서 개최된 유명한 아모리 쇼에 참가해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요.  미국 예술이 모던하게 흐를 수 있도록 이끌었던 그룹입니다.  





 슬론은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들고 회화가 일상생활과 결부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던  '애시캔파(Ash Can School)'에 참여합니다. 애시캔 파는 20세기 초 미국의 도시 실존주의를 중심으로 한 미술 운동입니다. 주로 1900년에서 1918년 사이에 일어난 운동이고요. 이 운동은 도시 생활의 현실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용상태가 어려웠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한 작은 "애시캔"이라 불리는 쓰레기통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해요. 이들은 도시의 소외된 지역, 공장, 거리, 일상생활을 주요 주제로 삼아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작품을 창작합니다. 




애시캔파(Ash Can School)와 에이트(The Eight)는 20세기 초기에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쳤고 차이점이라면 주된 활동 기간입니다. 둘 다 도시의 현실적인 모습을 다루는 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활동 기간과 구성 멤버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두 그룹 공통점이라면 모두 현실주의를 강조하며 도시 생활의 일상과 노동자 계급 등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슬론의 작품은 뉴욕 길거리 풍경, 식당과 술집 안, 나룻배, 옥상, 뒷마당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일상을 잡아냅니다.  도시의 활기찬 일상과 소란스러운 분위기, 투박하고 거친 생활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거지요.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삶의 기쁨을 담아내기 위해 초점을 촘촘하게 확보하고 피사체를 면밀히 관찰합니다.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그의 작품이 후기로 갈수록 색채가 밝아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슬론은 아모리쇼(Armoury Show)를 통해 유럽의 모더니즘 작품을 접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그려왔던 현실주의 도시 주제에서 벗어나 누드와 초상화로 주제를 바꿉니다. 초반기의 그림이 더 살가운데 말이죠. 그의 초기 작품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합니다.






<Sunday, Women Drying Their Hair>,1912/WIKIMEDIA COMMONS  

<Hairdresser's Window>/The Art Story





주변을 둘러보니 제법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며 뉴욕시의 스카이 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건물 옥상을 다용도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빨래를 널거나, 정원을 만들어 쉼터로 사용하거나 , 이도저도 아니면  밤하늘 보며 멍 때리는 용도도 가능하겠지요.  20세기 초 뉴욕의 그녀들도 비슷한 용도로 공간을 사용했나 봅니다. 바람의 일렁임대로 제멋대로 흰 빨래가 춤을 춥니다. 자매 같기도 하고 이웃 같기도 한 여인 3명이 한가하게 머리를 말리고 있는 중입니다. 자연풍으로 말이죠. 녹색 스커트의 그녀, 떨떠름한 표정을 보니 머리 매무새가 맘대로 되지 않은가 봅니다.  금발의 또 다른 그녀 B , 허리춤에 제법 균형을 잡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훑으며 들락날락하는 섬세한 바람결에 금발을 한껏 뽐내봅니다. 유일한 검정머리 그녀 C, 둘 다 상관없다는 듯 그녀들의 유난함에 그저 미소로 답합니다. 자세히 보니 엄마 같기도 하고요. 눈에 익은 모습에 슬쩍 그녀들의 수다에 끼어들고 싶어 집니다. 






'뭐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고?' 곰방대를 문 말쑥한 차림의 그가 이렇게 한마디 뱉을 것 같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고 퍼포먼스 같은 비즈니스를 하시네요. 의자에 앉은 손님의 뒷모습이 보이고 장갑 낀 주인장 그리고 보조인듯한 옆모습의 그녀가 네모난 앵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 뼘쯤 고개를 쳐든 맨 앞줄의 두 신사분은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한 모양입니다. 앞 표정을 볼 수 없으나 입을 쩍 벌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흘낏 쳐다보는 꽃모자의 그녀도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쇼킹한 퍼포먼스였나 봐요. 젊은 아가씨들, 친구인 듯 동료인듯한 그녀들에게 코맹맹이 소리와 함께  "어머머~저렇게 염색하나 봐, 획기적인데. 너는 어때? 우리도 한 번 해 볼까?"뭐 이런 놀라움과 묻고 답하는 과정이 뒤돌아 선 표정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을 연출하는 헤어 살롱이 장터에서 호객 행위 하는 느낌이라 웃음이 나오려 합니다.  






<렝가네시의 토요일 밤(Renganeschi's Saturday Night)>,1912/www.artic.edu





서빙하러 온 잘 생긴 남자 직원 표정 좀 보세요. 울상입니다. 여자 계산원의 표정은 어떻고요? '뭐 저런 아줌마들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읽힙니다. 오래간만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았습니다. 한껏 모자에 힘도 주고 안 입던 옷도 입고 엄마, 아내로서의 완장을 떼고  '나'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친구들과 이웃 같기도 한 또래와의 만남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지요. 입이 간질간질한 그녀 썰을 풉니다. 그녀 눈에 남자 직원의 표정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늘은 본인이 주인공이거든요.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이 시간을 말입니다. 





[9월-2023년/ WTC(World Trade Center 주변 직장인들의 오후)]






<The City from Greenwich Village>,1922/wikiArt.  

The Varitype Building today, at the corner of Sixth Avenue, and West 4th Streets/ Village preservation


1904년 4월 슬론과 그의 아내가 뉴욕으로 이주하여 그리니치 빌리지에 숙소를 마련합니다. 

-<McSorley's Bar>,1912

-<Sixth Avenue Elevated at Third Street>, 1928/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Wake of the Ferry),1907


 이곳이 슬론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그린 곳이기도 하고요. 19세기 후반, 예술가, 작가, 예술애호가들이 모여 이 지역을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휘트니미술관에서  뉴욕 대학까지 맨해튼 남서쪽에 있는 동네인데 보헤미안 문화의 중심지이고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자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예술가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브루클린으로 이주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경제의 이동에 따라 뉴욕 예술문화가 이동한 거지요.  








존 슬로안(John French Sloan), <Six o'Clock, Winter>,1912/WIKIART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밤의 창문>,1928/아시아 투데이

장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죽음을 타고(Riding with Death)>,1988/Singulart




존 슬로안(John French Sloan)의 그림 속 전차를 타고 뉴욕시내를 돌다 보면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밤의 창문>의 그림 속 주인공의 집을 지나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철의 끝에 장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낙서 같은 그림도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세 명의 화가들의 공통점은 뉴욕이라는 창의적이고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꽃 피웠다는 점입니다. 






[9월-2023년, Times Square 주변]






2024년 첫 주, 미국 동부에 위치한 도시 뉴욕으로 떠나보았습니다. 다양성과 역동성이 사람 머리수만큼 풍부한 곳이지요. 경제, 문화, 예술, 금융, 패션,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중심지이고요. 하지만 그들의 Before와 After는 하찮게 취급될지도 모르는 작은 일상에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일상 무시하지 마시고 단단하게 쌓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일상이 뿔나지 않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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