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0:1의 도전

나, 작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



저의 새해 목표는 브런치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다녔다.



세상에 없는 ‘나랏돈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쓰는 사람이 되고 나니, 글쓰기에 쏟은 시간과 에너지가 나이테처럼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금처럼 손에 잡히는 보상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일에서든 삶에서든 손에 잡히는 결실을 얻는 데에 도전하고, 거기서 성공해 기쁨을 느끼는 나. 그런 나에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이력을 쌓기에 ‘브런치 스토리 공모전’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브런치 대상을 향한 나의 글쓰기 여정이 시작되었다.


일단 목차부터 짰다. 브런치스토리 공모전에 응모하려면 10편 이상의 글을 브런치북으로 구성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묶어보았다. 그 후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순서와 흐름은 어떤지, 소재는 흥미로운지 말이다. 홀로 글을 쓰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유료 글쓰기 모임에도 들어갔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입시 설명회와 합격자 특강을 찾아다니는 고3 수험생의 마음으로,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와 전년도 수상 작가 북토크에도 찾아갔다. '내년 이맘때쯤 나도 판교 카카오 본사에서 북토크도 하고, 대상 수상작들의 전시 한쪽을 차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크고 밝은 희망을 품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들였다. 글을 쓴다는 건 꽤나 노동집약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시간만큼, 허리가 아파오는 만큼 빈 문서 위 글자 수가 늘어났다.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노동이다. 글쓰기는 열정과 고통의 집합체다.’라는 헨리 밀러의 말을 절감하며, 쓰고 또 썼다. 응모 마감일이 다가오는 계절엔 연휴와 주말을 온전히 썼다. 골방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이 결국 세상의 찬사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휴일 하루를 온전히 바쳐 완성한 글에 ‘좋아요’도, 댓글도 달리지 않을 때는 ‘계속 써서 뭐 하지?라는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글을 잘 못 쓰는 나 자신을 견디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마음에 쏙 드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채워지지 않는 날들. 하지만 이것보다 날 더 힘들게 하는 건 내 글이 '시장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글이 팔릴만한 글인가?’를 생각하면 속시원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돈 버는 사람의 이야기는 세상에 넘쳐나지만, '돈 쓰는 사람'의 이야기는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 귀한 나랏돈을 쓰는 일에 진심인 사람의 이야기가 직업인의 세계에서 한 장르로 자리 잡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하지만 ‘이 글이 책이 된다면 누가 주로 읽을 것 같아?’라는 질문에 '취준생,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만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쓰려 왔다. 내 글이 직업인 에세이 코너에 오르는 책이 되어 동시대 직장인들에게 읽히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역시 내 글은 직업인 이야기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운 것일까? 대중적이지 않은 글을 쓰면서 독자들은 성역 없기를 바라는 것이 순진하게 잘못된 희망인가 싶었다.


어쩌면 나는 계획된 실패의 길을 한발 한발 아주 성실히 걷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메아리 없는 고독한 글쓰기에 지쳤을 때쯤, 다른 공공기관에 다니는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고심해서 고른 주제이니 계속 써야지! 네가 제일 잘 쓸 수 있는 주제잖아.
네가 최초니까 충분히 메리트 있어!



결국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써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건 나만이 쓸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글’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일하면서 성장하고, ‘업’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공공기관에서의 시간을 사랑과 정성으로 쓰는 사람은 정말 내가 유일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왜 이 고유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쓰는 이유는 내가 일을 하는 이유와도 같았다. 숫자로 증명되는 일을 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일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이력서를 화려하게 채우는 경력은 아니지만 과정 자체에 몰입하며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잘 굴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작지만 위대한 무대 뒤의 영웅(Unsung hero)들이 있다는 것을 공공기관의 일 이야기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내 글이 나랏돈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게 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상대로(?) 나는 제12회 브런치스토리 공모전 수상에 실패했다. 그리하여 나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도전한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원래 어려운 일이었어. 이번 경쟁률이 15,000:1이었다잖아? 그러니 함부로 '실패'라 정의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에 도전했던 거다. 누군가의 말처럼 ‘실패는 어려운 일에 도전했다는 증거’니까.


생각해 보면 이번 도전이 좌절로 가득했던 건 아니다. 브런치북으로 묶은 나의 글은 일평균 조회수는 30~50 정도다. 매일 적어도 30명에게는 내 글이 닿고 있는 것이다. 소소하게 느는 예금이자처럼, 적은 조회수이지만 매일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된다. 비록 대상은 못 탔어도, 내 일을 알리는 일을 끝까지 마무리했고 그걸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 이거면 됐지.


'브런치만 도전하고 끝낼 거 아니잖아. 평생 글 잘 쓰고 싶은 거 아니야?'라고 한 지인의 말을 기억한다. 그래, 작가가 되는 길은 브런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브런치가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도 아니다.


브런치스토리 성수 팝업 전시 중 만난 '계속 쓰는 삶을 응원'하는 황보름 브런치 작가의 말



작가로서의 나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앞으로도 뭐든 계속 쓸 테니까. 그리하여 쓰고 또 써서 오랫동안 쓰는 사람으로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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