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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l 12. 2021

신라의 독특한 문화 : 모계혈통

| 모계 혈통―진골정통과 대원신통 |


신라에서는 매년 입춘이면 곡식과 생명을 주관하는 풍백(단군과 함께 온 풍백, 우사, 운사 중 하나) 여신에게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올렸다. 신라의 호국신인 선도산 성모와 시조신이자 지모신인 알영도 중요한 제사 대상이었다. 신라의 왕실 여성들은 시조묘나 신궁의 제사를 주관했고, 사후에는 신라를 지키는 산신, 신모, 성모로 추앙되기도 했다. 마치 상나라 왕실의 여성들이 신과 관련된 일을 맡아보았듯, 신라의 왕실 여성들 또한 신의 일을 주관하며 신라의 신앙을 이끌었다. 

 고대사회에서 하늘의 대변자인 신관(神官)은 그야말로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신라의 왕실 여성들 역시 신성한 신의 후손이자 살아 있는 신으로 존중받았다. 진흥왕의 모후인 지소태후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의 화현(化現)으로 여겨질 정도였는데, 시조신 알영의 후손이었으며 ‘진골정통’(眞骨正統)이라는 모계 혈통의 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신라의 유명한 색공(色功: 전문적으로 권력자에게 성 상납을 하는 것) 가문인 사도태후와 미실의 모계 혈통은 ‘대원신통’(大元神統)'이었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은 모계로만 전해졌기 때문에 아버지가 같아도 어머니가 다르면 형제들은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으로 나뉘었다. 마치 옛날에는 모계로 전해지는 성과 부계로 전해지는 씨를 구분하여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들끼리는 성이 달랐던 것과 비슷하다.(성과 씨에 대한 내용은 뒤에 다룸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은 라이벌 관계였는데, 왕후 선정이나 화랑의 계보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신라인들은 성씨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필요에 따라 어머니의 성을 쓰거나, 스스로 새로운 성을 만들어 쓰거나, 또는 중간에 다른 성으로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모계 혈통은 본질적이고 신성하게 여겨져 성과 별개로 아들과 딸 모두에게 전해지고 변함없이 유지됐다. 때문에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신라인들의 신성한 혈통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어머니면서도 총신(총애하는 신하)인 이사부 장군과의 사이에서 세종이란 아들을 낳았다. 어느 날, 이사부 장군이 진흥왕을 알현하러 갔다. 그런데 진흥왕 곁에는 이사부 장군의 아들인 세종이 있었다. 그러자 이사부는 진흥왕에게 먼저 절하고 다시 아들인 세종에게 절을 하였다. 세종이 다급히 일어나 어찌 아버지를 신하로 대할 수 있냐며 만류했지만 이사부는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아뢰었다.


 “지소태후의 신성함은 지아비 때문이 아닌, 신의 화현이라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종 왕자께서는 신(神)의 아들이신 겁니다. 어찌 감히 신하로써 아버지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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