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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독특한 성문화 : 색공(2)

by 소정 Jul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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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신라인들이 색공에서 원한 것 |

그렇다면 신라인들이 색공을 하며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정치적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색공지신 가문인 미실에게는 꽃미남 남동생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생이었는데 용모가 수려하고 말에 운치가 있어 눈길 한 번만 주면 따르지 않는 여자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당두라는 관리의 처가 아주 아름다웠는데 그녀 역시 미생에게 홀딱 빠져 미생을 자주 찾아갔다. 그러자 당두가 미생을 찾아와 이렇게 간청했다.



 “부디 색공만 바치는 첩이 되게 하여 평소에는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미생은 당두의 관직을 높여 주고는 약속을 했다. 


“내 너의 처와 더불어 천하와 국가를 위하여 인물을 번성하게 하겠다.” 

미생과 당두의 처는 결국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 훗날 미생이 그 아이들을 당두에게 주자 당두는 감동하여 아이들을 미생에게 돌려보내고 평생 충성을 다했다. 당시 사람들은 두 사람이 서로 아이를 양보한 것을 두고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평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미실의 사촌 여동생인 윤궁은 선모(仙母)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다. 당시 신라에는 국선 문노라는 정의로운 화랑이 있었는데 윤궁과 서로 첫눈에 반하였다. 하지만 문노는 윤궁에 비해 신분이 낮아 사귐을 많이 주저하였다. 그러자 윤궁은 


“그대 같은 영웅에게 어찌 좋은 씨앗이 없겠는가” 


하며 남녀 간의 대의를 밝혀 주기도 했다. 


미생과 문노의 이야기를 통해 본 신라의 색공은 충성스런 마음으로 성의 본질(큰 인물 낳기)을 함께하는 것이다. 신뢰를 다지는 소통의 의식이기에 ‘부정함’과는 다르고, 큰 인물을 낳으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기에 문란함과도 다르다. 세력의 결탁을 위해 성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성 상납과 비슷하나 사회적으로 정당하고 자발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성 상납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신라와 같은 성문화를 지금의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시대적인 요구가 다르다. 당시는 인구 증가와 왕실의 혈통 보존, 그리고 국가의 동량이 될 인물의 탄생이 중요한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 신라의 주체적인 남녀 관계 |

신라의 주체적인 성문화는 가족문화에도 이어졌다. 신라는 남성과 여성 모두 주체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왕후라도 왕과 이혼할 수 있었고(신라 왕들의 이혼 사례는 3건이나 된다), 왕후에게 뾰족한 잘못이 없다면 왕은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다. 후궁들 역시 왕이 마음에 안 들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제 발로 궁을 나가기도 했다. 

진흥왕의 왕후였던 숙명공주는 사랑을 좇아 출궁해 원광대사를 낳았다. 법흥왕의 후궁이었던 준실부인은 왕이 다른 후궁만 찾자 궁을 나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이처럼 신라의 여성들은 왕족부터 평민까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신분과 혈통의 문제로 부모의 반대와 부딪치거나 정략적인 혼인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끝내 진정 원하는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신라의 왕녀였지만 가야계 혈통인 김서현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극심하게 반대하여 결국 만명을 집에 가두었다. 그러자 만명은 어느 날 밤, 큰 벼락이 요란한 틈을 타서 탈출해 김서현에게 도망쳤다. 이후 만명은 김서현과 정식으로 혼인하여 아들 김유신과 딸 문명부인(태종무열왕비)을 낳았다. 

법흥왕의 딸인 지소태후 역시 아버지의 명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영실공과 정략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사부 장군을 총신(총애하는 신하)으로 삼아 늘 함께했고 딸까지 낳았다. 그리고 신라 사회는 스스럼없이 둘의 사랑을 인정했고 그녀의 딸은 당연히 공주로 봉해졌다. 이처럼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신라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아이가 어머니의 혈통과 신분을 따라가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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