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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독특한 가족문화 : 마복자

by 소정 Jul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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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의 독특한 가족문화 : 마복자 | 


신라인들의 문화 중 색공과 더불어 가장 신기한 것이 바로 마복자(摩腹子) 제도이다. 신라에서는 아이의 아버지를 엄마가 정해 줄 수 있었다.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은 성뿐만 아니라 아이의 혈통과 아버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그런 바탕에서 유행했던 것이 바로 마복자라는 풍속이다. 

신라는 골품과 혈통의 나라였다. 여성들은 아이에게 더 좋은 신분과 후견인을 만들어주기 위해 마복자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마복자란 ‘배를 문질러 낳은 아이’란 뜻이다. 임신한 여성은 더 높은 신분의 남성을 아이의 또 다른 아버지로 선택하는 풍속이었다. 만약 여성이 선택한 상대 남성이 여성을 받아들이면 ‘마례’(摩禮)라는 의식을 치르고 동침하는데 그로써 뱃속의 아이는 그 남성의 마복자가 되었다. 마복자는 정식 자식과 다름없었다. 


| 대통을 잇기 위해 마복자를 만든 신라 소지왕 |


21대 소지왕은 자식이 없었다. 반면 22대 지증왕은 원래 왕위 계승 서열이 낮은 왕족이었다. 하지만 임신 중인 지증왕의 부인이 소지왕과 동침하는 마례를 행하여 뱃속의 아이는 소지왕의 마복자가 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23대 법흥왕이었다. 자식이 없던 소지왕은 그런 식으로 7명의 마복자를 두었는데 법흥왕은 일곱 마복자들의 맏이가 되었다. 소지왕은 첫 마복자인 법흥의 아버지에게 왕위를 넘겼는데 바로 64세의 지증왕이었다. 그리고 지증왕의 아들이자 소지왕의 마복자인 법흥은 지증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화랑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던 마복자 풍속 | 


마복자는 화랑들 사이에서도 많이 행해졌다.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격인 낭두가 되려면 더 높은 상선이나 상랑의 마복자여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때문에 임신한 여자들이 상선이나 상랑의 집에 꿩을 선물로 바치고 총애를 받고자 줄을 서는 일이 많았다. 심한 경우, 마복자로 만들 아이를 얻고자 길가의 아무 남자와 야합하여 임신해 오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는 부부가 상의해서 예를 갖춰 진행했다. 화랑 중 가장 낮은 계급인 낭두의 처가 임신을 하면 높은 신분의 남성에게 예물을 들고 찾아가 마례를 청했다. 혹 받아들여져 총애를 입으면 아이는 그 남성의 마복자가 되었다. 이후 처가 집으로 돌아오면 원래 남편은 재물을 들여 사함(謝函: 감사한다는 의미)이라는 예를 갖추어 여자를 맞이했다. 아이를 낳고 석 달 후 다시 높은 신분의 남성을 찾아가는데, 남편은 세함(洗函: 씻는다는 의미)이라는 예를 갖추어 부인을 보냈다. 낭두의 딸들은 화랑들이 사는 선문(仙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만약 잉태하면 선종(仙種)을 얻었다고 하며 기뻐했다. 마복자를 통해 높은 신분과 인연을 맺고자 하는 낭두가 많았기 때문에 선종을 잉태한 여성은 낭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 신라에서 여성의 성 결정권 | 


이처럼 신라인들에게 성이란 훌륭한 자식을 더 많이 얻으려는 본질적인 측면이 강했고,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결정은 존중됐다. 따라서 여성이 원하면 뱃속의 아이에게 더 높은 신분의 아비를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반대로 남성이 임신한 여성의 아이를 마복자로 원해도 여성은 거절할 수 있었다. 

마복자라는 신라 특유의 양자제도는 타고난 부계 혈통을 넘어, 스스로 선택한 인연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 신라인들의 가치관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낮은 신분의 핏줄이라도 일단 여성과의 인연을 받아들이면 뱃속의 아이도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신라인들의 유난히 강한 공동체 의식과 천하를 한 가족처럼 여기는 애민정신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 마복자 제도가 현대에 던지는 의미 | 


 하지만 가족의 형태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부분도 클 것이다. 가족에게 혈연, 촌수 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택한 인연을 존중하고 가족 구성원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맺어진 인연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차별과 편견을 두지 않는 태도는 오늘날처럼 가족 구성이 다양해지는 시대에 시사점이 많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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