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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정조관념

by 소정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고려의 정조관념 |


그렇다면 이혼과 재혼이 많은 고려는 부부의 정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자유롭고 개방적인 풍속답게 첩을 두거나 바람을 피워도 쿨-하게 넘어갔을까?

고려 후기 충렬왕 때 전란의 후유증으로 고려의 인구가 줄자 대부경(大府卿) 박유가 첩을 두게 하자는 상소를 올린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본래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 지금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처를 하나만 두고 자식 없는 자들까지도 감히 첩을 두지 못합니다. … 청컨대 여러 신하에게 첩을 두게 하시고 … 첩에게서 낳은 아들도 본처가 낳은 아들처럼 벼슬할 수 있게 하십시오. 그리한다면 홀아비와 홀어미가 줄어서 인구도 늘어날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녀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첩 제도가 실행될까 두려워하며 박유를 원망했다. 나라의 큰 축제인 연등회가 끝난 어느 저녁, 박유가 왕의 행차를 호위하고 따라가는데 한 노파가 박유를 손가락질하며


“첩을 두자고 청한 자가 바로 저 빌어먹을 늙은이다!”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서로 말을 전하며 박유를 손가락질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길거리에 붉은 손가락 두름(조기 따위의 물고기를 짚으로 한 줄에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을 엮어 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면 첩을 두자는 박유의 주장은 어떻게 됐을까?

당시 재상들 가운데 아내를 무서워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는 논의를 하지 못했고 결국은 시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충렬왕은 ‘신의 없이 본처를 버리면서 첩을 얻으면 벌을 주겠다’라는 단서를 달면서까지 첩 제도를 실행해 보려 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처럼 이혼과 재혼이 자유롭다고 고려인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질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일부일처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지켜 갔다. 단지 과거로 현재를 보지 않고, 남녀 모두 현재 배우자를 위한 지조에 더 큰 의미를 두었을 뿐이다. 때문에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은 관계는 간통으로 치부했고, 혼인 중의 불륜과 바람은 중죄로 다스렸다. 하지만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연이 끝나고 나면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 모두 자유롭게 새로운 인연을 찾아갔다.

그렇다고 일편단심의 절개를 하찮게 여긴 것도 아니다. 사별 후에도 상대를 잊지 못해 한결같은 모습으로 절개를 지키는 모습을 고려인들도 아름답게 여겼다. 그래서 고려는 사별 후에도 절개를 지킨 여성은 절부(節婦), 남성은 의부(義夫)라 하여 나라에서 주기적으로 표창을 했다. 여성에게는 일부종사를 강요하면서 남성은 수많은 처첩과 기생을 거느리고 그것을 능력이라 추켜세우던 조선 후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사실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는 여성이 올바른 여성’이라는 조선 주자학이 남긴 편견은 오늘날까지도 피치 못해 이혼하거나 재혼한 가정을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고려인들의 관점은 다시 새겨볼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 고려에서 배워야 할 전통 |


고려 역시 한·중·일 다른 사회들처럼 유교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제의 사회였다. 하지만 한민족 고유의 인간 존중 정신을 바탕에 두고 그 위에 불교와 유교를 쓰임새에 맞게 사용했다.

이처럼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고유 사상의 분명한 가치와 불교 내세관의 영향으로 고려의 전통은 동시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했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백성의 절반인 여성들도 활달한 기개를 펼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 사회적 요구도 달라지고 그에 맞춰 제도와 문화도 변해 간다. 그중 계속 지켜 갈 가치가 있는 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세상에는 ‘착한 모습’을 한 악인도 있듯, ‘전통’ 역시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 이면에는 폐단과 악습도 있다. 사실 폐단과 악습은 처음부터 나쁜 것이 아니었다. 시대의 요청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제때 바뀌지 못하고 지켜져야 할 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을 때 기존의 필요는 묵은 악습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문화와 전통이란 것도 악습이 되지 않으려면 지킬 것은 지키면서 바꿀 것은 바꿔 나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문화와 사회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스스로가 올바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에 하던 것을 ‘생각 없이’ 답습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폐단과 악습도 늘어난다. 지키려는 전통이 과연 지금 이 사회에 걸맞은지, 그 속에 흐르는 정신이 사람들의 행복과 화합에 도움이 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간의 흐름에는 끊김이 없듯, 제도와 문화 역시 끊김 없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적합하게 적용된 전통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전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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