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15세기 말, 연산군의 조모 인수대비는 활달한 조선의 부녀자들에게 주자학적 여성관을 가르치고자 『내훈』을 지었다. 그 책을 통해 인수대비는 조선의 부녀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니 당연히 공경하고 섬기되 아버지를 대하듯 해야 한다. … 남편은 높고 아내는 낮으니 혹시 남편이 때리거나 꾸짖더라도 당연히 받들어야 할 뿐, 어찌 감히 말대답하거나 성을 낼 수 있겠는가!
주자학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을 조선의 언어로 잘 표현한 『내훈』은 200여 년 후 열녀라는 독한 종족을 만들어 냈다. 당시의 기득권인 양반 남성들만을 위해 차별 미화와 잘못된 사상 및 정책, 그리고 주자학적 서열론으로 기울어진 가족문화는 분열과 혐오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오늘날, 세대 간의 갈등은 명절을 넘어 도처에서 붉어진다. 그 근본에는 각 세대가 겪어 낸 다른 환경과 교육의 영향도 있지만, 직시해야 할 것을 직시하지 못해 곪아 터져버린 사상적·역사적 찌꺼기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는 일반적인 여성의 이미지에 덧씌워져 오늘날까지 내려온다. 누구나 ‘우리 엄마, 내 아내, 여동생, 우리 딸’이란 단어에는 한없이 애틋해진다. 하지만 그냥 ‘여자’라는 말에는 수많은 부정적 이미지가 딸려 나온다. 팥쥐 엄마 같은 야박한 계모, 남편 등골 빼먹는 뺑덕어멈, 무식한 여편네, 남자를 홀려 타락시키는 꽃뱀, 운전도 못하면서 차 끌고 나오는 김여사 등….
하지만 본질적으로 따져 보자면 그것은 딱히 남성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역사적 상처 속에 잘못 전해진 문화가 우리의 잠재의식을 그렇게 조각해 버린 것이 문제다. 때문에 같은 여자들조차 여자에 대한 본질적인 이미지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잘못된 상태를 유지하는 까닭은, 소수 기득권의 욕구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문제를 방치하고 무관심하게 살아가 버린 우리들 모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