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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Aug 15. 2021

양반 경쟁이 조선 여성문화에 미친 영향 2

열녀 배출기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모든 양반들의 공통된 이상 : 가문 중심 가족문화 만들기 | 


이처럼 여러 이유로 조선의 문화와 여성에 대한 관점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주자학에서 제시한 고대 중국 황실의 종법적 ‘가문 중심 가족문화’가 자리 잡아가면서 우리 문화도 ‘부계 혈통, 남성 중심 가족문화’로 변화해 갔다. 또한 주자학적 여성상을 집안 여성들에게 정착시키기 위해 집집마다 집안 여성들을 교육하고 단속해 갔다. 더불어 새로 들어온 며느리들이 열녀가 되어 가문을 빛내는 로또가 되어 주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 자신도 점차 주자학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열녀를 명예로운 여성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주자를 중국보다도 더 뜨겁게 사랑했던 조선! 결국 조선은 주자의 바람대로 가장 도덕적이고 질서 있는 문화 강국(대중화)이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주자학이 꽃피고 난 이후 조선은 가장 꽉 막히고 부패하며 차별적이고 폐쇄적인 나라가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롭고 평등적이었던 가족문화는 가장 권위주의적인 서열문화로 변질되었다. 주체적이고 활동적이었던 여성들은 집안을 주요 근거지로 여기며 남편과 아들을 위한 희생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 열녀로서의 삶 |


그렇다면 가문과 명예를 위해 어렵고도 특별한 열녀의 길로 걸어간 그녀들은 실제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았을까?

조선 후기, 남편을 잃은 과부는 살아갈 이유도 잃었다는 것이 보편적 관념이 되어 갔다. 그래서 과부를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의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불렀다. 미망인들이 젖먹이 아이나 늙은 부모를 위해 조금만 더 살아가고자 해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스스로의 관념이 죄책감을 갖게 하고, 삶의 의지를 꺾어냈다. 때문에 옆에 젖먹이가 있어도 죽고, 칼로 제 목을 찌르고도 신음조차 없이 죽어 갔다. 조선 후기 학자 한경소가 1818년에 간행한 시문집인 『창연집』의 「박열부전」에서 이런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달이 차서 아이를 낳으니 과연 아들이었다. 네다섯 달이 지나 유인(孺人: 품계가 없이 죽은 부인을 통칭해 부르던 존칭)이 미음을 끓여 아이를 먹였는데 잘 받아 삼키니 기뻐하며 “이제 아이가 젖을 먹지 않아도 죽진 않겠구나”라고 말했다. 남편의 탈상이 다가오자 이미 죽을 날을 정하고는 방 안에 사람이 없기를 기다려 몰래 독주 한 사발을 마시고 쓰러졌다. _(『화계집』)      


이날 밤 자정 무렵 어머니가 막 깊은 잠이 들려는데 문득 창 밖에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일어나 불을 켜고 보니 열부가 칼을 쥐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은 피로 흥건했고 턱 밑에는 구멍이 세 군데 있는데 헐떡이는 소리는 바로 그 세 구멍에서 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크게 놀라 급히 “얘야, 얘야, 네가 정말 죽는 것이냐!”라고 울부짖었다. … 열부(열녀의 또 다른 표현)가 갑자기 일어나 어머니를 붙들고 말했다.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 이 딸은 이미 죽기에도 늦었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신 날, 곧 따라 죽었어야 했습니다. 풀과 섶으로만 덮어 둔 관이 그대로 땅에 있는데 제가 어머니 얼굴을 한 번 더 뵙지 못해 잠시 미루었을 뿐입니다. 이제 결심했으니 살아 무엇하겠습니까. 또 슬하의 청상과부 자식을 어머니께서 차마 보기 어려우실 것이니 빨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 벽을 보고 누워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으니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목숨을 이어 보려고 억지로 약초 달인 것을 마시게 하였다. 겨우 한 번 마시자 목구멍이 부풀어 올라 세 구멍에서 나란히 솟아 나오며 연적과 벼루가 엎어진 듯 계속해 흘러내렸다. 마침내 다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정오가 되기 전에 죽었다. 그날은 8월 23일로 나이 스물하나였다. _(『창연집』)      


그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됐다. 그리고 그럴수록 열녀의 죽음은 더욱 처참해졌다. 열녀가 많아질수록 평범한 죽음으로는 열녀 축에 끼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도가 높아진 잔혹한 죽음은 사람들을 무디게 만들었다. 어느새 열녀 하나하나의 인간적인 이야기는 먼 세상 다른 종족의 일인 양 무뎌져서 더 이상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지 못했다. 다만 ‘열녀’라는 대상화된 이미지만 남아 ‘비상식적으로 독한 존재’라는 혐오감만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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