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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Aug 16. 2021

진짜 내 자손은 누구인가?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부모 봉양의 책임은 장남 며느리에게만 있는가?  |


일명 ‘효도계약서’라는 것이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불효자방지법」이란 것도 있다. 캥거루족 소리까지 들으며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돌봤지만, 재산을 상속하자 나 몰라라 하는 세태에 등장한 법안들이다. 어쩐지 불효자식이 넘쳐나는 각박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며 뒤따르는, 어쩔 수 없는 시대상인 것일까?      


잠깐 연주 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초등 교사인 연주 씨는 오빠와 남동생을 둔 삼남매 중 차녀다. 그녀는 요즘 마음이 영 불편하다. 홀로 사시는 아버지는 노인 장기요양 3등급이 나올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 하지만 오빠와 남동생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결국 연주 씨는 남편에게 아버지를 직접 모시고 싶다는 의중을 조심스럽게 전해 보았다. 부부는 일주일도 넘게 이유 모를 냉전기에 빠져들었다. 결국, 어느 날 남편과 시어머니는 충고 같은 완곡한 말로 반대의 뜻을 전해 왔다. “장남도 아닌 당신이 먼저 나서는 게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아서라! 출가외인이 그런 말을 먼저 꺼내면 사돈댁 큰며느리 입장이 뭐가 되겠니? 게다가 남동생네는 너희보다 잘살지 않니?”   

  

연주 씨도 한때는 장남인 큰오빠네 책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먹고 살기조차 힘에 부쳐하는 큰오빠 부부에게 현실적인 방법은 없어 보였다. 장사를 하는 두 부부는 조카들을 안사장 어른께 맡기고 저녁 늦게서야 귀가한다. 명절 때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며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그나마 남동생 부부는 둘 다 전문직이라 제법 부유하다. 하지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막둥이 의식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작은 올케 역시 자신들은 막내 집이라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왜 부모 봉양은 장남의 몫인 걸까? 딸이 친정 부모를 모시려면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 걸까?’하는 고민에 연주 씨는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 흔들리는 전통적 가족문화  |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연세 드신 시부모는 맏며느리가 모시는 게 당연했다. 제사와 동생들 건사 등, 모든 집안 대소사도 장남과 맏며느리의 몫이었다. 때문에 아들만 떡하니 낳아 놓으면 그걸로 노후는 ‘걱정 끝!’이었다. 아들이 크면 봉양과 대소사를 책임질 ‘맏며느리’를 데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부모 봉양과 제사를 이을 장남에게는 더 많은 재산과 권한이 돌아갔다. 바로 윗세대만 해도 그것을 당연한 전통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권한과 재산이 장남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즉, 장남 특혜는 거의 없다. 더불어 여성들의 인식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런데도 장남과 맏며느리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는 여전하다. 여기서 괴리가 온다. 결국 과거에 맏며느리가 해 오던 일들은 언젠가 터져 버릴 폭탄 돌리기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가족 일은 가족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낯설고 불편하다. 결국 오해와 원망 속에 세대 간, 성별 간, 입장 간 갈등은 자꾸만 깊어진다. 


윗세대들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전통 파괴이자 말세의 세태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우리 때는 어림도 없었지’라는 한탄과 함께…. 한편으로는 올바른 전통이 점점 망가져 간다는 안타까움에 전통을 지켜내겠다는 시대 역행의 의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는 제각기 할 말이 많다. 문화적 과도기에 이르렀음에도 변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과거만 고집하는 한, 한 가족문화는 계속 부조화를 양산해 간다. 결국 노인 부양 문제와 명절 기피 등의 현상은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다. 


대체적으로 가족문화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전통’이란 이름의 애매모호한 관습들이다. 하지만 그 ‘전통’이란, 유구한 역사 중 어느 시대의 문화를 이르는 것인가? 가장 가까운 조선 시대의 유교 성리학인가? 아니면 부모님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일제강점기의 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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