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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가 만들기 대작전

by 소정 Aug 18. 2021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명문대가를 만들기 위한 세 가지 방법  |


하지만 조선의 국시가 중국 송나라 주자학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주자학 외의 것들은 잡초처럼 뽑혀 갔다. 급기야 조선 중기 이후 주자학은 종교화되기까지 했다. 주자학 광신도가 된 양반들이 많아지면서 조선의 가족문화는 급속히 변해갔다.

그것은 주자학도인 양반 사대부의 이해와도 큰 관련이 있었다. 대대로 명문 가문이었던 권문세족에게 새롭게 진출한 신진 사대부가 맞설 근거는 오로지 ‘학문과 능력’이었다. 과거 시험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신권(臣權)을 키워 가던 사대부들은 자신들도 특별한 명문대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주자학에서 발견해냈다. 바로 왕실의 예법을 사대부도 쓸 수 있도록 주자가 정리한 『주자가례』의 실천이었다. 그 내용은 대략 ‘①가묘 만들기, ②종갓집 만들기, ③ 『주자가례』 식 제사 의식’이라는 3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본래 이론과 사상은 현실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한 것이다. 사상이 정치와 예법에 녹아들면 영향권에 속한 이들의 행동과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가치관의 변화는 결국 문화와 풍속을 바꾸고 현실 모습을 변화시킨다. 즉, 풍속을 바꿔 백성을 교화하고자 했던 주자학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예법(禮法)이었다.      


그 첫걸음이 바로 가묘 만들기였다. 

조선은 부계 친족 중심의 가문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의 재가 금지, 시집가기 풍속 만들기’와 더불어 ‘가묘 설립 확산’에 노력했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종갓집이나 이름난 고택에 가보면 집 한 켠에 높이 솟은 사당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가묘(家廟)다. 가묘에는 해당 가문의 시조와 4대조까지의 조상 신주가 모셔져 있다. 가묘는 가문의 조상신들을 모시고 교통하는 일종의 가족 신전이다. 관혼상제 등의 집안 대소사를 집안 어른들께 아뢰듯, 가문의 대소사는 반드시 가묘의 조상 신주에 고해야 했다.


두 번째 단계는 종갓집 만들기였다. 

가묘를 운영하며 가문의 구성원들과 조상신을 연결하는 곳이 종갓집이다. 종가는 같은 부계 혈족의 가장 큰집으로 적장자(嫡長子: 정실부인이 낳은 장남)만이 종가(宗家)를 계승할 수 있었다. 종가의 주인을 종자(宗子)라 하고 그의 부인은 종부(宗婦)라 하는데, 종가는 가문 전체의 큰일을 돌보았다. 일단 가묘가 세워지면 그곳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이 구성된다. 그리고 종갓집은 가묘 운영과 제사를 위해 『주자가례』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묘와 종갓집이 늘고 『주자가례』식 제사가 반복될수록 주자학적 가족문화와 가치관은 조선의 풍속으로 깊이 녹아들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선은 낯설고 이질적인 송나라식 가묘 설치를 사대부들에게 적극 권장했다. 


실제로 가묘를 모시는 가문이 늘어가면서 조선의 가족문화도 변해 갔다. 가묘는 집의 위상을 강화시킨다. 더불어 가문의 계승 원리가 중요해진다. 가문을 계승하는 자손은 봉사조(奉祀條: 재산 상속 시 제사를 위해 균분상속 원리 위에 추가되는 특별 분배 조항)의 명분으로 더 많은 상속을 받는 등,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문 계승의 원리는 고대 주나라의 종법 질서에 근거한 ‘적서’(嫡庶)라는 기준에 따랐다. 적(嫡)은 정통성을 가진 본줄기(적통)이고, 서(庶)는 곁가지다. 종법은 특히 가족들 간의 적서 관계와 그 서열을 매우 엄격하게 따졌다. 예를 들면, 신라나 고려에선 왕의 동생, 다른 아들, 외손자, 사위 등이 출중하여 인망이 높으면 장남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왕위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 종법에선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무능해도 반드시 장남에게 왕위를 넘겨야 했다.


종법의 관점에선 친혈연이나 실질적 친소(親疏)보다 적서라는 대의명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서 관계는 일종의 군신(君臣) 관계로 대치시켜 볼 수 있다. 적서 의식은 조선 중․후기 주자학이 종교화 되면서 인간관계 전반에 녹아들어 사람을 보는 관점 자체를 변화시켰다.                   


더불어 적자와 친손이 아닌 서자나 외손은 진짜 자손(적통 자손)이 아니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가장 중요한 ‘제사’를 적장자만 지낼 수 있다고 규정했기에 첩의 아들이나 외손이 있어도 적장자란 명분을 세우기 위해 양자를 입양해야 했다. 덕분에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식이 늘어갔다. 더불어 양자와 관련된 분쟁도 늘어 갔다. ‘양자를 들인 후 친아들을 낳았을 때, 둘 중 누구를 적장자로 볼 것인가?’, 또는 ‘외손이 있는데도 양자를 입양해야 할까?’ 등의 문제였다. 서자와 외손을 친혈육으로 보던 전통적 가족관과 상반된 주자학적 관점은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례를 다음 글에서 하나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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