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통적 가족문화에 대한 재고

by 소정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주자학의 종법적 가족문화에 대한 재고 |


본래 종법의 적서 관계는 고대 봉건시대 왕실에서 사용되던 논리였다.(예법 자체가 원래 왕실과 귀족에게만 적용되던 규칙이다) 타고난 신분과 서열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정해진 역할을 엄격히 지키게 하지 않으면 왕손들의 반역을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종법은 같은 왕자녀라도 적서·연령·성별 등 아주 세세한 기준으로 서열과 차례를 분별한다. 그래서 고대 예서인 『예기』에서는 “예는 분별하는 것이다”라고 예의 정신을 밝히기도 했다.


인류사 어디에나 서열을 나누고 차별하는 인간의 탐욕은 존재한다. 하지만 고대 왕실의 종법을 모든 인간관계로 확장시킨 주자학적 서열 관념은 그 어느 시대보다 촘촘한 ‘서열과 차별의 그물’을 엮어냈다. 타고난 계층, 가문의 위세 뿐 아니라 직업의 종류, 조직과 가족 내 위치, 역할, 나이, 성별 등 세밀하게 서열을 비교하고 그에 걸맞은 차별을 요구했다.


오늘날 서울대 총장에 비견될 대사성의 직위에 있던 59세의 퇴계에게 막 과거에 급제한 33세의 기고봉은 학문적 비판과 함께 문제를 제기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참 당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기뻐하며 8년간이나 ‘사단칠정’ 논변을 주고받았다. 선조가 은퇴하는 퇴계에게 인재 천거를 요구하자 그는 기고봉을 추천했다. 또 35살이나 어린 율곡이 맹랑하게 도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도 격식과 허물을 두지 않았다. 만약 퇴계가 조선 후기를 살아갔다면, 권위의식과 서열의식으로 젊은이들의 도전과 비판을 기탄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공자는 의리와 명분을 중시했지만, 그렇다고 유교가 일방적인 권위와 서열을 중시한 것도 아니었다. 부자자효(父慈子孝: 아비는 자식에게 자애롭게 대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를 다하라),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은 아우에게 우애롭게 대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하라) 등 유교의 덕목은 본래 쌍방적이다. 하지만 주자학처럼 대의명분의 분별과 신분질서의 정립을 중요시하다 보면,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통행이 될 수밖에 없다. 곧 아랫사람의 일방적인 공경과 순종이 더 우선시되는 것이다.


주자학은 본래 유교를 보완하기 위해 주자가 재집성한 것이다. 그 안에는 배울만한 지혜가 많다. 하지만 무엇이든 초심과 본질을 잃으면 불행과 병폐만 남는다. 질서 유지를 위한 서열 의식은 비교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비교하는 풍속은 허례허식과 과시적인 명분 추구로 이끌었다. 개인보다 가문을 중시하는 가문 의식은 친혈육 간의 가족애를 의리 명분적인 차별애로 바꾸고, 권력과 책임을 과도하게 편중시켜 구성원들의 불평등을 크게 했다. 장남과 큰며느리는 혜택보다 더 큰 고단함에 짓눌리고, 다른 구성원들은 불평등과 불합리에 설움 받았다. 조선이 시대와 환경을 고려치 않고 과거의 시스템을 고집했던 결과는 모든 구성원들의 불행뿐이었다.

keyword
이전 14화외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합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