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4)

by 고캣

아빠는 삼 년 전에 돌아가셨다. 단순한 교통사고였다. 경찰은 엄마와 나에게 그저 운이 안 좋았다는 말만 했다. 아빠가 죽은 날 아침, 엄마는 아빠에게 돈이 너무 없다고 불만을 말했다. 엄마도 참고 참은 다음에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아빠도 알고 있었다. 아빠는 그래서 걱정 말라고 자신이 우리 가족 모두를 책임지겠다고 다정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빠는 그런 상황에도 무심히 밥만 먹고 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흘끗 아빠의 얼굴을 봤다. 웃고 있었지만 정말 웃고 있지는 않은 표정이었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엄마는 슬픔에 빠져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혼자서 자신이 너무 부담을 준거 같다고 중얼거리며 누워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라도 엄마에게 밥을 먹였다. 엄마는 밥상을 엎고 수저를 던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밥상을 차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까지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까지 없으면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취업도 못하고, 알바도 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만 보내는 무능한 백수일 뿐이니. 어쩌면 나는 엄마를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다행히 엄마는 슬픔을 이겨내셨다. 혼자서 밥도 먹고 운동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는지 엄마는 어디서 돈 많은 남자를 데려와 재혼을 하기로 했다고 나에게 통보했다. 동호회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라고 했다. 그것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있는 남자였다. 대기업의 임원인 그 남자는 돈이 많았다. 나를 처음 만난 곳도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맨 처음 나온 수프와 빵은 숲 속에서 먹은 거랑은 비교가 안 되었다. 그 사람은 엄마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서 여러 가지 선물을 사 왔다. 그의 매력인 재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을 하는 엄마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나랑 같이 흘린 눈물은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아빠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런 엄마를 끝까지 지킨 나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모질게 굴었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엄마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라는 그 사람의 말에 발끈해 비난의 방향을 그 사람에게 향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어린 아들에 대한 것들도 신랄하게 입에서 뱉어 냈다. 그러자 갑자기 몸이 붕 뜨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오른쪽 뺨이 조금씩 뜨거워졌다. 입안에서 피 맛이 살짝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는 그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걸어서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채로 있으니, 엄마가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문 밖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걸로 보아 엄마가 나간 듯했다. 아마 그 남자를 보러 갔겠지. 나는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울분을 참지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옷장을 열어 가방을 꺼내 잡히는 대로 옷을 담았다. 그렇게 집을 나와 아무 버스나 타고 내려서 걷고, 또다시 아무 버스를 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제 슬슬 돈이 떨어졌다. 무언가 팔만한 것이 없나 싶어 가방을 뒤져보았다. 눅눅해지고 더러워진 티셔츠만 가득했다. 그러다 가방의 안쪽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보였다. 이게 무슨 돈인가 싶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나는 기억이 나자 다시 그 돈을 가방에 두었다. 아빠가 준 용돈이었다. 수학여행날 친구들과 과자라도 사 먹으라며 쥐어준 돈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그 돈은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우연히 노숙자 쉼터에 들어왔다. 이미 몰골은 다른 노숙자들과 다르지 않았으니 그곳에 있는 것에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다 센터장이 속보라며 소리를 지르며 센터의 벽 중앙에 종이를 하나 붙였다. 숙식제공에 꽤나 많은 급여, 갈 곳 없는 노숙자 우대. 같이 있을 수 없는 문장 두 개가 같이 있었다. 센터장은 거대한 물고기를 잡은 초짜 낚시꾼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이 숲 속으로 우연히 들어왔다. 이 나무에 들어온 것도 우연이었고, 집을 나온 것도, 엄마가 그 사람을 만난 것도 모두 우연이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이란 게 그런 우연이 쌓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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