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의 밤, 그날 따라 바람이 무지 불었다. 텐트 안에 자리를 잡고 짧게 명상을 한 후 눈을 떴는데, 전 세션에서 바이올린을 열정적이게 연주하던 바이올리니스트가 내 쪽으로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명상 중 깊은 환희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계속 미소를 짖고 있었나보다. 그걸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25살의 이 바이올리니스트 태국-영국 혼혈이며 방콕에서 활동하는 프로 바이올리니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매력적이게 생긴 청년이었다. 얼마전 자신과 많이 가까웠던 영국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직도 그 슬픔을 애도 중이라고 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애도로 이어졌고, 나는 4년전 자살로 삶을 마감한 시여동생 Anna에 대해 얘기했다. 그가 숙소로 돌아가기 전 나는 실례가 됨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청했고, 그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연주해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곡이 Anna가 좋아하던 곡 중 하나였다는걸 남편을 통해 알게되었다.
이번 여행 중 Anna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딱 붙어 떠나질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혼자 명상을 하는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Anna가 불쑥불쑥 들어왔다. 그녀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홋카이도 푸라노에서, 눈이 일미터도 더 넘게 쌓인 그 작은 스키 마을을 함께 걷던 기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복 재생되었다. 우린 그 눈 덮인 작은 마을을 걸으며 많은 얘기들을 했다. 야키토리 집의 청년이 귀엽게 생겼다고 한번 잘해보라며 희죽거리며 농담을 했고, 내가 멜번으로 이주하면 옆집에 살 예정이었던지라, 우리 함께 매일 저녁 맥주를 같이 먹자고도 했다. Anna는 아기를 갖고 싶어했고, 각자 아기가 생기면 공동 육아를 하자고 했다.
푸라노에서의 일주일 동안 아나의 컨디션은 들쑥 날쑥했다. 오랜 시간 앓은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 그녀는 힘들어했다. 괜찮은 날은 낮에는 스키를 타고 밤엔 맥주를 마시며 웃었다. 괜찮지 않는 날은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푸라노에서의 일주일을 함께 보낸 후 난 그녀 오빠와의 결혼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 Anna와의 여행 3달전에 받은 프로포즈였지만 나의 마음은 갈팡질팡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가족이 되고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시간에 상관 없이 그녀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두는 그런 이웃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일주일, 푸라노에서의 일주일을 함께 보내고, Anna와 그녀의 오빠, 나의 피앙세는 멜번으로 돌아갔고, 나는 싱가폴로 돌아와 다시 바쁜 일상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3주 후 회사에서 피앙세의 전화를 받았고, Anna에 대한 비보를 접했다. 나는 구할 수 있는 제일 빠른 비행기편으로 그날 밤 멜번으로 날아갔다. 공항에는 피앙세와 그의 아버지가 와 있었고, 피앙세는 나를 보자마자 울듯한 얼굴로 달려와 나에게 안겼지만 막상 울음을 터트릴수는 없는것 같았다. 예비 시아버지의 댁에 도착하니 소식을 들은 시아버지의 친구들, 동료들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3일을 피앙세와 함께 지내며 그의 상태를 주시하는데 온 에너지를 쓰고 기진맥진한 채로 싱가폴로 돌아왔다.
Anna가 떠난 후 한달 후 그녀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해 추모식이 치러졌다. 추모식에서는 생전 Annad와의 추억을 기억하는 글과 추도사가 이어졌고, 우리는 조용하게 그녀와 이별했다.
Anna가 떠난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나는 멜번으로 이주했고, 그녀의 오빠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그녀의 옆집에 살고 있다. 이상하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그녀가 매일 생각난다. 이 아이의 성장을 같이 경험하면 지금은 다른 상황이 되었을까.이 아이의 순순한 웃음을 본다면 그녀는 얼마나 기뻐할까.
그녀가 떠난 후 매일 그녀 생각을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타인에게 꺼내지 않았다. 남편과 자주 Anna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동생을 잃은 그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 슬픔은 굳이 꺼내지 않게 되어버렸다. 누루고 있던 슬픔이 이번 파타야 여행을 통해 한번에 터져나왔고, 여행에서 돌아와 난 2주를 호되게 앓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도 그녀를 떠나보낸 애도를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녀에 대한 애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