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글쟁이들은 술 마시면 무슨 얘기를 할까

by 남이월

며칠 전에 학원 친구들과 한 잔 했다. 무슨 학원이냐고 한다면 아무래도 일반적인 학원은 아니다. 문예창작과 실기를 준비하는 학원으로 우리는 그 학원에서 몇달간 함께 실기 준비도 하고 시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제 술자리는 매우 재밌었고 일회성으로 기획됐던 우리의 만남은 모두의 동의와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 모임을 기획한 U가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위해 나와 나머지 친구들을 초대해 단톡방을 만들었을 당시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게 되네?


사실 같은 학원을 다녔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몇달 간 매주 얼굴을 보며 내적 친밀감은 최대치로 쌓여있었지만 실제로 말을 섞어본 적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랬다. 그나마 모임 주최자인 U와 U와 친하게 지내던 S와는 수업 마지막 날 함께 학원 근처 맥도날드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해보았다. H와는 같은 시간대에 실기 연습을 하면서 몇 번 얘기를 해본 적이 있다.

문제는 L이었다. L은 학원의 몇 없는 남자였고 매 수업마다 한 칸의 거리를 두고 앉았지만 대화다운 대화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L 뿐만이 아니라 위에 말한 3명도 어디까지나 대화를 해본 적이 있다지 얘네를 사적으로 볼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초대를 받았고 나 또한 한 번쯤 모여서 놀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우리는 빠르게 계획을 잡았다. 1월은 다들 선약 많아서 우리의 약속은 자연스레 2월로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소심한 성격의 L이 처음 정했던 날짜가 안 된다고 U를 통해 얘기하는 바람에 H가 만나서도 얘기 안 할 거냐고 극대노 하는 한 번의 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2월 11일, 즉 어제 우리는 첫번째 만남을 가졌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이른 1시 40분쯤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뒤이어 가장 멀리 사는 U가 도착해 우리는 몇달 만에 만나 안부 인사를 나눴다.

잠시 뒤 그전부터 말이 없던 L이 불안했던 우리는 그에게 어디냐고 물어보았고 그 카톡에 대답하던 L은 실시간으로 버스를 반대로 타며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그 다음으로 멀리 사는 H가 도착했고 우리는 L의 뒷담(?)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두 사람을 기다렸다.

잠시 뒤 약속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S가 도착했고 시간상으로는 지각이었지만 버스를 반대로 탄 L의 임팩트가 너무 컸기에 S의 지각은 자연스레 묻혔다.

근처 해변을 걷던 중 L이 도착했고 H는 그가 오기 이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과하면 용서해주겠다고 다짐했지만 미안하다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L을 끌고가 잡도리를 살짝 해주었다.

어찌저찌 다 모인 우리는 우선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얘기도 조금 했던 것 같다(솔직히 이후 있을 음주의 영향으로 정확히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 후 카페를 나와 노래방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인생네컷을 찍자는 의견이 나와 노래방까지 가는 길에 있던 하루필름에 들어가 찍었고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역시 인생네컷은 여러명이 낑겨서 찍어야 꽉 찬 것 같고 잘 나오는 듯하다.

노래방에 가기 전부터 L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은근히 어필했고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반 동안 한 곡도 부르지 않았다. S와 U는 부르기는 했으나 한두곡 부르더니 그만두어버렸고 결국 남은 시간 동안 나와 H 둘이서 성대를 혹사해가며 불렀다.

이상한 점은 노래를 부른 건 우리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남은 세 사람이 기가 빨렸다는 것이다. 특히 후반 10분 S의 어깨에 기대어 거의 잠을 자던 U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노래방을 나오니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이 문을 열 시간이라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바닷가 경치도 구경하고 마찬가지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대화도 많이 나눴다.

해변을 걷다보니 우리는 슬슬 배가 고파졌고 우리는 미리 알아둔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간 식당은 바다가 바로 보이는 무한 리필 주점으로 떡볶이나 라면, 오뎅탕 같은 식사류와 술을 100분 동안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전에 다른 친구들과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내가 추천했다.

사실 글의 제목이 글쟁이들의 술자리 대화 주제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날 글 얘기를 딱히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저 제목은 어그로다. 물론 시 얘기를 잠깐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이날 술자리에서 글 얘기보다 정치 얘기를 더 많이 했다.

글 얘기를 안 한 이유도 사실 딱히 없다. 아무래도 술자리에서 일 얘기를 안 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사람이 다섯이라 식탁 두 개를 붙여서 앉았다. 일부러 창가 쪽에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여 바닷가 경치를 보며 먹고 마실 수 있었다. 나와 H가 같은 테이블을 썼고 나머지 세 명이 남은 한 테이블을 썼다.

그래도 내가 끌고 왔으니 일단 안내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먹을 거 가져오라 해놓고 앞접시 가지러 갔다 왔더니 다들 적당히 먹을 걸 가져왔다. 양 테이블에 각각 오뎅탕이 하나씩 배치됐고 나랑 H는 라면도 끓였다.

적당히 술도 가져오고 오뎅탕이 끓자 우리는 우선 건배를 했고 한 잔씩 마셨다. 이전부터 술이 약하다고 걱정하던 L은 아니나 다를까 청하 한 잔에 얼굴이 빨개지며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건 술이 세다고 자신하던 U가 청하 4잔을 혼자 스트레이트로 달리더니 돌연 “아 취한 것 같아”라는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술자리가 시작된지 10분쯤 지났는데 취한 사람이 두명이나 속출하니 우리는 이 모임이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지만 그냥 마시기로 헀다. U와 L은 술 대신 물을 자꾸 마시면서 취기를 빼기 위해 노력했고 남은 세 사람도 둘을 반면교사 삼아 천천히 마셨다.

이 무렵 우리 사이의 어색함은 거의 완전히 풀려 이전보다 편하게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중 한 명이 각자의 네이버 블로그를 서로이웃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빠르게 추가를 완료하였다.

서로의 블로그 글을 살짝 읽어보다가 거기서 재밌는 주제가 생각나면 그걸로 또 대화를 이어가고의 반복이었다.

배를 슬슬 다 채웠을 부렵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2차를 가기로 했다. 장소는 근처에 위치한 할맥이었고 가는 사이에 H가 급한 연락을 받아 그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바로 앞 바닷가를 둘러보며 구경했다.

그때 말이 없던 L에게 대화를 주도해보라고 했는데 고심하던 L은 대뜸 “나는 ISFJ야”라고 선언하더니 다시 말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가 잇프제는 어떤 성향이냐고 물은 질문에는 완벽주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L은 완벽주의자다라는 밈이 만들어져 실컷 놀리던 와중 H가 연락을 끝내고 돌아와 2차로 향했다.

2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술을 많이 마셔서 솔직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이때쯤 정기적으로 만나자는 얘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겨울 방학 때 펜션에 놀러가자는 얘기부터 일본에 유학가는 U의 일본 자취방에 다같이 쳐들어가자는 얘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결론적으로 2월달에 한 번 더 보자는 얘기를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2차에서 술을 열심히 마시고 완벽주의자인 L은 소주 뚜껑에 붙은 꽁다리 철사를 이용해 토끼 귀를 영혼을 담아 만들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즐겁게 놀고 마시다 보니 다들 막차 시간이 임박하여 슬슬 자리를 정리했다.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S가 5분 정도 먼저 일어났고 얼마 뒤 남은 네 사람도 버스 정류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U와 H가 같은 버스를 타고 나와 L이 같은 버스를 타게 되어 우리는 정류장 근처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함께 남은 나와 L은 정류장에서부터 술자리에서는 하지 않았던 시 얘기를 막 해대며 꽤 친해졌다. 시를 쓰는 스타일은 달랐지만 시에 대한 생각은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L의 아파트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절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재밌는 일들이 많았지만 술의 영향인지 그냥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세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 안 나는 대신 사진 첨부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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