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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3. 2019

10. 노인과 책방

삼십대 초반이 어느 날 느낀 노부부의 삶


17년 초여름, 큰 굴곡 없이 살던 우리 부부는 일생일대의 도전 앞에서 진정 부부가 되었음을 느꼈다.

결혼생활 내내 남편과 나는 각자의 삶을 추구하고 각자의 행복에 따라 살아간다고 느꼈던 나는 이제부터 모든 일을 함께 하게 되면서 하나의 삶으로 합쳐진 느낌을 받았다.


친정, 시댁 부모님 모두 탐탁지 않아하셨던 책방을 동네에 조용히 열고 그렇게 우리의 나른하고 느린 삶은 시작되었다.


페인트 칠부터 싱크대, 커튼까지 어떻게든 남편의 노동력으로 이룬 책방을 열고 경제적인 모든 일들에 부딪치고 의견 충돌로 힘들기도 하고 손님들과 따뜻한 인연을 맺고 책으로 힘을 내기도 하는 나날, 물론 경제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열패감에 사로잡힌다는 책의 구절을 읽으며 무척이나 공감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는 어떻게든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코너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우리는 가게를 열기 전 오전을 동네 뒷산을 산책했다, 오랫동안 몰랐던 동네의 어귀를 돌고 좁은 골목을 기웃거리고 날씨가 좋은 날은 좀 더 멀리 나가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유치원을 지나 수행 중인 아침의 절 탑 앞에서 땀을 식히고 내려와 늦은 아침을 먹고 가게를 열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오늘 하루 손님을 점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오전을 보내며 하루의 무탈함에 대해 안도했다.


늘 신나는 모험과 새로운 오늘이 기다리는 특별한 날만이 진정한 인생이라 믿고 조급해하며 우울해했던 나는 큼직한 볼에 시리얼을 담아 티브이를 보며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며 양푼에 비빈 비빔밥을 마주 보며 먹는 우리의 일상이 소중하기도 하고 신기했다. 이런 여유를 우리가 가져도 될까.


옆 동네까지 걸으며 담벼락의 강아지와 인사하고 천천히 변하는 듯 변치 않는 풍경과 마주하며 걷는 우리에게선 숲의 냄새가 난다.

산책의 끝에 존재하는 절 앞의 탑을 돌며 당신의 건강을 빌고 가족의 사랑을 빌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길 조용히 빌어본다.


숨 한 번 들이쉬며 오는 길에 마주치는 어르신들과 돌아가는 길을 함께하며 우리가 벌써 노부부가 되었다는 생경한 느낌을 받는다. 조용히 아침을 함께하고 느긋한 하루를 열고 조용한 하루를 마감한다.


집안일을 끝내고 내려가 남편이 내린 커피를 마시며 오늘 읽을 책을 고른다.

조용하고 느긋한 삶에 익숙해진 우리 부부의 하루의 무탈함에 감사하는 나 스스로를 보며 벌써 이런 마음이 들어도 될까 자문한다. 역시 행복한 감정에 익숙지 못한 나약한 사람.


오랫동안 우리의 책방과 함께한다면 그때도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쓰고 좋은 책을 고르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풍성한 머리칼과 카디건과 진주 귀걸이가 잘 어울리는 건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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