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진 Mar 13. 2019

16. 일기장을 집어든다.

치과를 다녀와 연유를 넣은 아이스 라떼를 마시며 두터운 베를린 일기를 집어 든다.

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다. 나도 이렇게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베를린에 90일간 머무르며 쓴 일기라니 그러고 보니 게으른 내가 잘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일기쓰기 인데 본격적으로 일기장을 사서 꾸준히 쓰기 시작 한지 5년이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갑자기 쓰기 욕구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라, 급하게 잔 받침으로 쓰던 냅킨으로 책갈피를 대신하고 결말이 없는 이야기를 슨다.

과연 얼마나 쓰다 말지 모르겠지만 문득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역시나 막상 쓸 준비가 되니 오래된 것들이 한 대 엉켜서 풀리지가 않아 내 특기인 주절거림이 시작 될 것이 빤하니 사실 이렇게 재밌게 쓴 일기를 가지고 책을 낸 작가가 부럽기만 하다.

난 일기처럼 쓰면 정말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세요.’라는 말을 들을 텐데 말이다.

쓰면서도 재미가 없다. ' 이걸 누가 읽냐고 그러니까'


그래도 일기장을 편다.


오래됨에는 추억을 동반한 물건이라든가 추억 그 자체가 존재하는데 오래된 사연과 내 생각 모든것이 담긴 책꽂이에 쌓인 지난 일기장을 그래도 들춰본다.

기나긴 사계절을 겪고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얇디얇은 종이에 휘갈겨진 글을 읽으면 1년이 아주 짧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분명 뜨거웠던 여름은 길었고 어둡고 축축한 긴 겨울을 나고 있다 생각했는데 페이지를 따져보면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되는 구나 싶어 허무하기도 하다. 

확실한 건 기념적인 날을 담은 장을 읽다보면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마냥 그 시간을 흘러 보내지는 않았다는 것이 떠오르지만 이내 일어나고 밥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는 그 순간 속에 누구를 만났거나 무슨 생각을 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 보면 아주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할지 잘 살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된다.   

 

오래되고 지나간 나의 소박한 상상과 바람 모두 내 손으로 직접 남긴 어쩌면 나의 마지막을 검증해주는 유일한 ‘나’자체, 이루지 못한 것들의 집착과 후회 잊고 있는 꿈들을 보며 다시 조급해지다 이내 포기한다.

지난날을 들춰볼때 확신 할 수 있는 점은 내가 조급하게 굴때 모든 일을 망쳐버리고 감정만 힘들다는 것이다.

나의 약점은 갑자기 발동하는 조급함이다.

내손으로 반복적으로 망한 이야기를 썼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벌써 먼 과거가 된 듯한 17년 7월에 남긴‘나의 글쓰기 내용도, 글도 재능과 관계없이 그 속의 농도가 스스로 깊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로 가든지 포기 할 수밖에 없는 그 한숨에 대하여.’라고 남겼는데 그때 느꼈던 그 한숨은 오늘도 그대로 힘없이 나와 변하지 않은 오늘을 대변한다.

꾸준히 썼던 만큼 해소되었다 생각했던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더 배우면 다듬어 줄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하는 막연함 때문에 그리고 어리석음때문에.


그럼에도 낯선 타지 영수증 뒷면에 구불구불하게 써내려간 오래된 여행의 흔적, 그리고 슬며시 떠오를 때 썼던 짧은 이야기 토막, 우리가 나눴던 단편적인 이야기, 갑자기 읽다 그리워지는 이야기들에 나는 과거에 발이 묶여 버려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생각하다가도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 종이 뭉치들 위에 정신없이 써 내려 가다보면 나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어떤 그 무언가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다시 글쓰기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글 밥을 먹고 살고 싶었던 지난날이 가끔 이렇게 소박하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지금에 감사하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덩달아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렇게 정력적으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그 힘이 나는 부럽다.

요즘은 진지함보단 재밌게 쓰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의 어느 골목 노천카페에서 압생트를 마시며 녹색의 뮤즈를 기다리던 한 예술가처럼 녹색의 힘에 압도당해 쓰면 나아질까, 나는 어떤 예술이 하고 싶은 걸까. 인정받고 싶은 걸까 잘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를 찾고 싶은 걸까,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것일까. 찾을 수 있을까. 칭얼거림만 잔뜩쓰면서

작가의 이전글 15. 엄마만의 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