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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Mar 20. 2019

18. 생양파를 씹으며 한 생각.

어린 아가는 잠을 자고 티비소리 없이 고요한 집 안에서 입을 열일도 없는 그런 적막함 속에서 나는 포트에 물을 끓여 혼자만의 커피를 마셨다.    


싱크대 앞에서 가만히 서서 열어놓은 방 안에서 혹여 아이가 갑자기 깨어 칭얼거리지는 않을까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가만히 서서 이런 하루하루가 지속된다면 누군가를 미워할 일도 없고 관계의 오해가 생길 일도 없으며 말실수를 할 일도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한 말을 곱씹으며 혹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진 않았을까, 불안해하며 잠 못 이루는 날도 없겠다고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네.라고 위로했다.    


한동안 먹지 못했던 고춧가루를 푼 칼칼한 김치찌개를 끓이고 생 양파를 씹으면서 어른의 식사를 혼자 독식하며 매운 음식을 즐기고 향이 강한 생 양파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 고독의 시간을 즐기게 되는 것이 어른이라면 앞으로도 어른은 해볼 만할 텐데.   

 

나의 시간을 쓰기 위해선 너에게 두 배, 세 배의 시간들을 써내야 하지만 너는 나보다 작고 작은 손과 발로 그리고 몸짓으로 어느 날은 나를 위로하고 내 볼을 만지며 나보다 더 큰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며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자극한다.

   

나는 이 조용한 공간 속에서 이 침묵 아닌 침묵이 서로에게 애처롭다 생각한다.  

  

생양파를 씹는 어른, 아이를 키우는 어른, 자라지 않았다 생각했던 내 마음은 이미 고민거리가 터질 듯 쌓인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모든 것에 절차가 있다 생각했던 길은 단언할 수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넘치듯 밀려오고 나는 너를 보며 그림자를 숨겨본다.  

  

너와 나의 시간들이 얼추 쌓이면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소도시라 생각했다.

대도시가 낯설어지고 너 외의 다른 시간들이 낯설다.    


이렇듯 나의 글들은 작아지고 좁아지고 한없이 세상과 동떨어질라 치면 나는 잠든 너의 옆에서 부엌의 식탁 위에서 낯선 시간들을 풀어낸다.

이대로 세상에서 살아지고 싶지 않다 아우성치는 나의 자존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 스스로 잡문이라 칭하는 이 숱한 혼자 뱉어내는 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앉아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안고 이 소도시에서 너와 나만 남은 이 세상에서 조용히 포트의 물 끓는 소리와 연필의 사각거림으로 채워진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급한 마음에 노트를 덮고 싱크대 앞에 선다. 

양파를 다듬고 파를 다듬는 오후가 되면 어느 날은 내가 기억하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 옛사랑, 사랑이 되기도 전에 사라진 추억, 펼쳐 본 촌스런 일기가 낯섦이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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