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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Apr 13. 2017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극도의 불안을 이겨내 보기 위한 발버둥

극도의 불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란 씨앗이 가슴에 심어진 이후부터 나는 온 정성을 기울여 걱정과 부정적인 가정들로 불안을 키워갔다. 불안은 내 영혼을 빨아들이며 커져갔고 나는 더 이상 불안이라는 녀석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일에 대한 불안은 오늘이 가는 것을 아쉽게 만들었다. 어제의 불안을 안고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곤욕이었다. 눈을 뜨고 나서 몇 초가 지 정신이 드는 순간 나는 다시 눈을 감기로 결심하곤 했다. 일어나서 맞이해야 할 오늘이 두려워서, 또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할 오늘이 무서워서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얼 지나지 않아 다시 오늘을 맞이해야 했던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은 긍정적인 생각도 희망적인 미래도 다 잠식해버리고 나를 더 깊은 불안으로 밀어 넣고 움츠러들게 했다.


나약한 마음

나는 악착같은 사람이고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지내온 나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무너지고야 말았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었을 뿐이지 실상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믿음이 생겼고 스스로에게 수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가치롭지 못한 사람인가? 내가 걸어온 시간과 내가 걸어가야 할 시간은 어떠할까? 과연 나는 이 먼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왜 이 모든 것들이 허무하기만 한가?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의미는 무엇일까?


허무했다. 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이 전부 허무했다.


폭발

극심한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해버리자 나는 지금까지 버텨오던 것들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붙잡고 있던 지푸라기를 놓아버리자 머리가 깨어질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불안을 느낀다거나 허무함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의 고통이었다.


병원을 찾아 뇌수막염이 판정을 받고 입원을 했다.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푹 쉬세요. 그게 제일 큰 치료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휴식을 권했다.


이토록 찬란한 봄날, 이토록 찬란한 인생의 어느 날을 병실에서 보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든다. 아픈 이들의 신음소리가 고막을 울리고 희망보다 절망이 앞서는 병상에서 천장만 보고 있으니 서럽다.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내가 큰 병에 걸려서 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으리란 생각에 이르렀다. 만약 내게 죽음이 다가왔다면 의사 선생님이든 신이든 그 누가 됐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겠지..


나는 불안의 끝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이 불안에 숨이 막혀 저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살아있다면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겠지..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이 불안도 잠잠해질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삶의 의지를 견고히 하고자 애써본다.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온 노력을 기울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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