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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an 13. 2018

나는 신발이 없다고 울적해했네

#낯선 곳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매너리즘

나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나의 일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내 머리는 미래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현재의 어떤 것에도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희망이나 긍정적인 생각은 꺼져가는 작은 불씨처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저 관성에 의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열등감에 늪에 빠져들었다. 타인과의 비교는 스스로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고 희망은 절망이란 바람 앞에 꺼져버렸다. 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매일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내게 강사로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유일한 활력소였다. 출강을 나가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 일이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주는 에너지로 하루를 살았고 무기력한 삶을 버텼다. 아이들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눈빛에 에서 희망을 보기도 하고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 때로는 우상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 되기도 했다. 나를 아주 반겨주고 좋아해 주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고 나와의 시간을 무료해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만큼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간단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서 인생의 답을 찾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어느 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고 아이들에게서 얻던 새로움과 신선한 충격이 줄어들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내게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때쯤 나는 한 초등학교를 찾게 됐다. 새벽에서 출발해서 겨우 수업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그 학교에서의 시간이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날의 경험은 내가 갖고 살아왔던 많은 편견과 아집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으며, 내게 삶의 이유와 목표를 다시금 알려줬다.



새로운 경험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내비게이션에 알람에 눈을 떴다. 무척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몸이 90도로 기우는 듯한 경사. 차가 이 도로를 올라갈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간 끝에 학교가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좁은 운동장. 중, 고등학생만 많이 만났던 내게 초등학생들과의 만남은 낯설고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한 꼬마 아이들 삼삼오오 무리 지어 학교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던 도중 각 학년에 반이 하나뿐인 점에서 무척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학생들의 수업태도였다.


학교를 찾아온 방문객에 대한 관심과 신기함도 잠시, 아이들은 수업을 진행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소란스러워졌다. 선생님이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며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더해서 아이들의 태도도 좋지 않았다. 아이들은 급기야 책상에 발을 올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를 상황이 이어졌다. 소위 말하는 좋은 말로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분노 조절이 힘들어 보이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장난을 심하게 치는 한 아이에게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메롱을 하며 화난 척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순간 화를 내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그 장난에 맞장구쳐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 아이들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급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급식소를 가는 골목이 너무 낯설었다. 아이들이 이런 곳을 지나서 식사를 하러 가는 것이 가능한가 할 정도의 골목길이었다. 시골 동네의 골목길 같은 풍경과 가파른 내리막길에 적잖게 놀랐다. 식사를 하며 같이 갔던 선생님들께 말했다. "편부 편모 가정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버릇이 조금 없는 것 같아요. 애들을 더 감싸줘야 할지, 화를 내서 잘못을 알려줘야 할지..." 그랬더니 선생님들도 공감을 하셨다. "그렇죠? 저도 좀 힘드네요.."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내가 물었다. "학생들도 여기서 식사를 하나요? 여기가 급식소인가요?" 나의 질문에 선생님께서 대답을 주셨다. "아이들은 여기가 집이래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초등학교도 기숙사가 있나요?" "아니요. 아이들은 여기서 살아요."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나요?" "네. 집이 없을...." 더 이상 질문을 할 의미가 없어졌다. 내게 계속 자기 옆에 앉으라며 자리를 내어주던 아이가 있었다. 사람 정이 그리워서 했구나. 사람이 그리워서 그랬구나. 수업 시간에 외부에서 온 강사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부모님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 짧은 시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급식소에서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났다. 최대한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함께 장난을 치며 서로 먼저 가겠다며 뛰기도 했다. 다음 시간은 아이들과 은 체육관에서 활동을 할 예정이었고 등에 이름표를 붙어야 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스티커 붙이는 것을 부탁했고 나는 등에 스티커 붙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자기도 붙여달라며 우르르 줄을 섰다. 나는 한 명 한 명 스티커를 붙여줬다. 한 친구는 스티커가 잘 떨어지지 않게 때려달라고 했다. 때려주면 어떡하냐며 등을 꽉 안아줬다. 체육관에서 게임이 시작되었고, 나는 응급상자를 들고 서있었다. 한 친구가 발목을 다쳐서 내게 치료를 받고 가자 또 아이들이 우르르 줄을 섰다. 자기도 다쳤다며..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누군가의 관심이 그리워서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스를 반으로 잘라 다쳤다는 친구 모두에게 붙여줬다. 한창 엄마 손을 타야 할 나이에 그러지 못한 아이들의 피부는 너무 많은 각질로 파스가 잘 붙지 않을 정도였다. 마음이 아팠다.


교실로 돌아와서 보게 된 아이들의 모습은 이전과는 달랐다. 같은 가방 같은 실내와 같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스무 권도 되어 보이지 않는 낡은 학급 문고에 시선이 한참을 머물렀다. 스스로의 꿈과 비전을 적어보는 마지막 시간. 나는 아이들이 어떤 꿈과 비전을 적을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적은 것들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작은 꿈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

나는 갑자기 성공이 하고 싶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너희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가 첫 번째 이유였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향하는 문을 열어주고 싶어서였다. 간접적이지만 많은 것을 겪고 배울 수 있는 책을 곁에 두도록 돕고 싶었다. 책을 통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았다. 다만 내 처지를 탓하고 더 나은 것을 가지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는 못난 나의 어리석음이 불쌍했다. 나는 신발이 없다고 슬퍼했다. 발을 다친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한 켤레의 신발이 아니라 튼튼한 두 발을 주고 싶다. 더 많이 더 멀리 걸을 수 있도록.. 그래서 파스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줄 것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였다. 그곳에서 시간은 너무나 이기적 이게도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 돌이켜 볼 수 있게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순간 할머니를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가 세상 끝나기 전 온 힘을 다시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던 소중한 사람이다. 병원을 찾아가 사는 게 힘들다며 엉엉 울던 나를 다독여주시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품에 안겨 열심히 살겠다고.. 의미 있게 살겠다고 다짐했더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고,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아다. 할머니는 나를 업어 키우셨다. 그리고 떠나시던 날까지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다. 나는 넘치게 받은 이 사랑을 관심이 부족한 누군가에게 나눠 줘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 사명감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야 한다. 때론 흔들리고 불안하다. 신념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이 어렵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 만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할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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