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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 시절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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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목영 Oct 14. 2024

봄꽃

  꽃이 피기 시작한다. 매화, 산수유가 폈다. 선발대요, 전령사다. 이내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이 피고 수선화, 복사꽃, 살구꽃이 멍울을 터트릴 테고 벚나무, 목련, 오얏나무도 채비를 마쳤다. 연인들의 밀회 장소로 사랑을 받아왔던 수양버들도 핀다. 벚꽃이나 배꽃의 화사함에 비해 참 소박하다. 하지만 일순간 삭막했던 동네가 꽃동네, 새 동네로 변한다. 눈이 부시다. 꽃이 피고 제비가 오기는 했지만 봄바람 속에서도 겨울의 한기(寒氣)는 은밀하다. 꽃샘추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그러나 겨우내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터라 꽃은 추위에도 상관치 않는다. 여리디 여린 봄꽃들이 서로 다투어 피면서 겨울 추위를 밀어낸다. 눈 속에서도. 얼음 속에서도.

꽃은 믿는다. 꽃샘추위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봄은 기운생동(氣運生動)의 계절이다. 그 기운으로 긴 겨울을 나고 그 생동이 꽃을 피우게 한다. 미당은 소쩍새가 울어 천둥이 울어 꽃이 핀다고 했다. 이백은 산꽃이 좋아 달 아래 독작(獨酌)한다. 봄꽃 가지 꺾어 산(算) 놓고 우인(友人)과 대작(對酌)한다. 다음날은 거문고 품고 와서 마시자 한다.


꽃이 지기 시작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다. 목련이 지면 철쭉이 피고 철쭉이 지면 모란이 핀다. 봄이 가면 시름도 슬픔도 많다. 그래서 뻐꾸기는 서럽게 운다. 봄꽃의 화려함도 결국은 단명이니 이 얼마나 허무하고 속절없는 일인가. 두보는 한 조각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봄기운이 저물어 간다고 꽃들은 어이 저리도 서둘러 떨어지려 하는가 (화비유저급-花飛有底急), 봄 더디 가기를 내 그리도 바랬건만 하며 봄 시름에 겨워 술을 마신다. 영랑은 모란이 지면 봄을 여읜 슬픔에 젖어 삼백예순날 하냥 운다고 했다. 그러나 꽃이 피는 것도 사람이 오는 것도, 꽃이 지는 것도 사람이 가는 것도 다 스스로 한다. 모두가 정해진 미래다.


노자(老子)는 자연의 무사공평(無私公平)함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은 치우친 사랑을 베풀지 않고 만물을 생성화육(生成化育) 함에 있어 있는 그대로 행한다고 했다. 꽃은 그 뜻을 알아 텃밭이나 심산유곡, 황무지에서도 더위도 추위도 가리지 않고 핀다. 자연에 맡길 뿐이다. 또 하늘의 도는 지극히 공평무정(公平無情)하여 특정한 사람을 골라서 친함도 덜함도 없다고 했다. 꽃은 예쁜 각시나 밤새운 노름꾼에게도 자신의 아픔다움을 보여주는데 차별이 없다. 하늘은 온갖 꽃들에게 햇빛을 골고루 비춰주고 비도 골고루 뿌려 준다. 어떤 색깔의 꽃도 편애하거나 폄하하는 일이 없다. 천도무친(天道無親)이다. 꽃이 피는 것이 그리고 사람이 오는 것이 ‘도’라고 한다면 꽃이 지는 것도 사람이 가는 것도 역시 ‘도’이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했다. (도법자연-道法自然)

그래서 노자는 사람이 자연을 본보기로 하여 따라가라는 가르침을 펴고 있다.

꽃이 피고 짐에, 사람이 오고 감에 전혀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힘들어할 일이 아니란다. 자연의 도리이니 순응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두보가 시름에 겨워하고 영랑이 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가.

그런가. 그렇지만 않은 것 같다.


도가 자연을 본받는다면 봄이 간다고 애통해하고 꽃이 진다고 시름에 잠기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요 도이니 그래서 ‘스스로 그러함’이니 자연을 본받는 것 아닌가.

그러니 꽃지는 것이 아쉬워, 봄 가는 것이 서러워, 나도 두보처럼 영랑처럼 시름에 잠기고 눈물을 흘리련다. 술도 한껏 마시겠다. 오가는 이 봄을 위해.



 두보 : 시인, 可惜

 영랑 : 시인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미당 : 시인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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