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행이 시작된 곳, 수산 시장

by 은손


분명히 저기에 무언가가 있다


집이 쭉 이어진 골목길.


서울의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파트와 다르게, 이곳의 집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붕의 색감, 나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삶의 흔적까지. 골목만 걸어도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그런데 저 골목 끝자락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온 동네 들개가 짖어 댔지만, 무서워할 여유가 없었다.

분명히 저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직감이 있었으니까.

지나가기만 할 테니, 공격하지 말아줘.





어머나

이곳은 생선을 말리는 작업장이었다. 청년이 수레에 무언가 가득 담아왔다. 오늘 잡았던 오징어를 방금 염지해서 가져온 거란다.


바로 매트에 천천히 쏟아냈다. 꼬릿꼬릿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싫지 않았다. 그건 누군가의 노동이 만들어 낸, 삶의 냄새였으니까.


몇 걸음 더 내려가니, 또 다른 염지 작업장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내가 기웃기웃거리자,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까이서 구경해도 괜찮아요.”


작업장 앞에는 참치 머리가 수북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심심할 때마다 먹고 있었다. 엄마가 김밥 쌀 때 옆에서 재료를 집어 먹었던 나처럼, 염지한 참치를 종종 훔쳐먹는 까마귀. 부부는 매일 있는 일이라는 듯, 신경도 안 썼다. 참치도, 사람도, 까마귀까지 — 서로가 있어야 존재하는 완벽한 공생 관계처럼 보였다. 다른 종끼리 어울리는 생태계, 스리랑카에서는 현실이었다.


세 번째 작업장은 철저하게 분업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참치 손질을 끝내면, 누군가 소금을 발랐고, 누군가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손끝은 바빴고, 집중은 깊었다.


그중 한 사람이 직접 손질해 보겠냐며, 아예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주저했을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못 먹어도 GO!’ 외쳐볼 테다. 전문가에게 배우는 기회인데 말이다. 두렵다는 이유 하나로, 기회를 걷어차는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지.




조금 더 걸으니, 거대한 수산시장이 나타났다. 아침에 들렀던 시장이 구멍가게라면, 이곳은 이마트 같았다. 여행객도 제법 많았다.


건너편 목욕탕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생선 내장을 손질하고 있었다. 얼마나 더울까. 묵묵하게 일하는 모습이 멋지면서도, 어딘가 짠했다.


옆에는 염지 작업장이 있었다. 아까 간 작업장에서는 모두 반갑게 인사해 주었지만, 이곳에서는 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병풍이라도 된 듯이 풍경의 뒤편에 머물러야 했다.




이 시장의 이름은 뭘까. 구글 지도에서 위치를 검색해 보았다. 아뿔싸, 내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네곰보 수산시장이었다.


그렇다면 아침에 다녀온 시장은 어디였을까. 구글 지도에 등록된 이름은 네곰보 제너럴 수산시장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툭툭 기사가 엉뚱한 목적지에 내려준 덕분에 훨씬 선명한 하루를 보내게 된 셈이다.


여행지에서는 길을 잃어도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스리랑카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광을 어쩌다 탄 툭툭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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