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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갇혀있다 보니...(2)

잠들 곳조차 없는 북극곰을 생각하며...

by 메이슨

북극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얼음 위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이 되어있어서 겨울은 오히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이다.

그럼 언제 동면을 하나?

북극권은 사계절 내내 사실상 겨울이므로, 우리의 반달곰과 같은 동면은 평생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신을 한 북극곰은 동면을 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리 보일 뿐이다.

출산이 임박한 어미 곰은 눈 밭에 큰 굴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거의 반년을 지내고 나온다. 이를 산모굴(maternity dens)이라 하는데 출산을 하고 새끼를 키우기 위한 동굴이다.

바닷바람이 바늘처럼 날이 서면 펄펄 내리는 눈이 굴의 입구를 깊숙하게 묻어버리고, 두텁게 내린 눈으로 굴의 형체도 펑퍼짐해지면, 오래전에 굴에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던 암콤은 따스해진 그 안에서 새끼를 낳는다. 동면을 하는 곰과 비슷한 신체 상태를 유지한 채 먹거나 마시지 않고, 오로지 새끼를 낳고 키우는 데만 전념한다.


갓 나은 새끼들은 한국을 열광케 했던 ‘판다 푸바오’의 출생과 비슷하다.

눈은 감겨 있고 이가 없으며 무게는 1파운드(1/2킬로) 정도이다. 몸길이는 30~35cm에 불과하며 부드러운 흰 털로 덮여 있다.

전적으로 어미에게 의존하는 새끼들을 그녀는 온몸의 지방을 녹여서 젖을 만들어 먹이고, 봄이 되면 부쩍 커진 새끼들과 같이 산모굴을 부수고 밖으로 나온다.

반년 가까이 일반 곰들의 동면보다 더 독한 인고의 세월을 굴 속에 지낸 것이다.

Photo by Polar Bears International


북극곰의 수컷들은 로맨티시스트이다.

이들은 4월과 6월 말 사이에 해빙(海氷) 위에 남겨진 암컷의 발바닥 향기를 쫓아 짝을 찾아 나선다.

그 길은 수십 킬로가 되기도 한다. 짝짓기는 그들 만의 밀월을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대체로 독립된 해빙(海氷) 위에서 이루어진다.


수정란은 바로 착상되지 않으며, 암컷이 산모굴 속에서 칩거하는 긴 기간 동안 자신과 새끼를 부양할 만큼 충분한 지방이 몸에 축적되어야만 착상이 된다. 이 생물학적 현상을 지연된 착상(delayed implantation)이라 하며, 최장 8개월까지 갈 수도 있다.

하얀 겨울왕국의 가장 위엄 있는 지배자로서, 대대손손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진화의 선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만 년에 걸쳐 완성된 이들의 진화는 더 이상 선물이라 볼 수가 없다.

지구 온난화로 이들의 서식지가 빠르게 파괴되면서, 종(種)의 종말(終末)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북극곰의 2/3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이들의 주요 서식지는 허드슨만(Hudson Bay) 유역인데, 이 만의 서부, 남부 지역은 개체수가 1980년대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2021년 현재 기준).


이는 이들의 주요 먹이이고, 출생의 키를 쥐고 있는 체내 지방의 공급원인 물범을 제대로 포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범은 얼음이 덮인 바다에서 얼음 틈새에 코를 내밀고 숨을 쉬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것이 북극곰의 사냥법이다. 이 고도의 테크닉은 엄마 곰이 새끼들에게 2년 정도를 가르쳐 줘야만 한다.

바다가 많이 얼어있을수록 물범의 숨구멍이 제한되니 사냥이 순조로운데, 온난화로 해빙은 일찍 오고 결빙은 늦어지니 사냥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얼음이 없어지는 만큼, 얼음 위의 포식자인 이들의 개체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체의 체중도 심각하게 줄고 있는데, 무려 4개월 동안 한 끼도 못 먹는 애들이 허다하다고 한다. 일부는 나무 열매나 다시마, 죽은 육지동물의 사체를 대체해 먹는 것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눈앞에 먹잇감을 놓고서도, 막상 먹을 힘이 없어서 물어뜯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큰 덩치에 날렵한 수영 솜씨를 보여주는 이들이지만, 요즘은 익사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북쪽으로 가는 바닷길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얼음 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여 탈진하기 때문이다.


북극곰의 모습은 지구온난화의 가장 절망적인 장면으로 회자된다.

북극의 빙하는 2035년이면 완전히 없어질 것 같다는 암울한 분석도 있으니, 이들의 운명은 시한폭탄과도 같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사람들은 무기력 해져서 얼음 위에 누워 있거나, 눈 밭을 어슬렁 거리는 이들을 상대로 관광패키지를 개발하여 성업 중이다. 북극곰은 사람을 해지지 않는다고 떠벌리면서, 북극곰과 가까이 있는 인생 샷을 남기라고 거품을 문다.

이는 이미 더워진 북극에 관광차의 매연, 인간의 활동 등 탄소 발자국을 더 남기는 일이다.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것으로 예고된 올해, 북극곰이 진짜 위험하다!


Photo by Absolut Canadá



지구온난화의 제일 심각한 문제는, 발등에 불은 떨어졌는데도 사람들이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위기 불감의 문제’라고 한다.

설령 이런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하고자 하면, 일상생활을 당장 석기시대로 돌아가야 할 정도로 바꾸어야 하는데,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에 짜 맞추어진 우리가 과연 감내해 낼 수 있을까?

덜 먹고, 덜 입고 더 불편한 주거환경에서 살며, 스마트 폰도 SNS도 멀리하고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보니 나는 말고, 정부차원이나 글로벌 차원의 대승적(大乘的) 해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무기력한 기대만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지 못하는 ‘위기 불감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서서히 달구어지는 비커 속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예년에 비해 확실히 따뜻해진 겨울을 즐기고 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웅크린 채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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