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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람 Feb 11. 2023

07나에게 낭독을 하다

예술청 낭독회에서

 단톡방에 예술청 낭독회 공지가 떴다. 쉬는 날이다. 낭독회를 할 수 있다는 기분에 쾌재를 부르며 참석 댓글을 달았다. 낭독회 전날 같이 참여하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읽고 싶은 책 가지고 7시 10분에 오셔서 낭독하면 된다고 한다. 장소는 대학로라고 한다. 7시 공연인데 10분 전에 오라는 말에 좀 의아했다. 그래도 낭독회인데, 그리고 초보인데 조금 막막하고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 날 혜화동 4번 출구로 나왔다. 아르코 극장에 들어가서 예술청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건물 뒤쪽으로 300m 정도 가라고 한다. 사방을 살펴봤지만 딱히 예술청이라는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길치가 느끼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캄캄한 밤이다. 동료 선생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옛날 동숭아트센터라고 한다. 익숙한 이름에 곧 찾은 것만 같았다.







 핑계 같지 않은 이유로 나는 5분 후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무대는 어디에 있을까 들어가서 끝일까? 공연이 시작되어 무대에만 빛이 있을 텐데 어떻게 들어가지? 아! 객석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아무리 리허설이 없다고 해도 진행 순서는 정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불청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좌우를 살펴 사람들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차분한 분위기다. 모두들 빛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처럼 무대를 향해 조용히 날개를 접고 앉아있다. 탑 조명을 환하게 비춘 응접세트가 눈에 들어온다. 낭독자를 중심으로 반지름이 객석인 무대다. 성우님과 낯익은 선생님들의 얼굴들이 보인다. 성우님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엘리사벳 선생님 다음에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신다.






 지각으로 만든 불편한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소란이 사라진 무대에는 빛과 그림자만이 있었다. 나는 그림자 한 귀퉁이 쪽으로 몸을 붙이고 귀를 열고 무대를 봐라 봤다. 부드러운 어조를 가지신 선배님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낭독자들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공간에는 무한 상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낭독 명상을 하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에 이완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걸 느꼈다. 줌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눈앞에서 호흡을 나누고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꿈인 듯 느껴졌다. 입술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밝고 고운 낭독 릴레이였다. 누가 나를 때리거나 꼬집지도 않았는데 나는 선생님들의 낭독에 빠져 울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낭독 삼매경에 빠져 있던 나는 활들 짝 놀라 무대에 섰다. 이완된 근육이 뻣뻣하게 굳었다. 조명으로 앞이 환했지만 내 눈은 캄캄하기만 했다. 대표님과 성우님들, 낭독 가들 앞에 있었다. 나는 무대에 서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정말 어색한 상황이지만 난 낭독회에 참석하고 싶었고 이 자리에 서고 싶었다. 동숭아트센터는 20살에 연극 공연을 하러 다녀갔던 곳이다. 33년 만에 내가 다녀갔던 자리에 다시 돌아왔다는 인연에 감사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1년 7개월 동안 낭독을 하면서 진정한 쉼을 경험했다. 나에게 몰입하고 내 소리를 듣고 타인의 소리에도 경청할 수 있는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낭독회에 읽을 책으로 나에게, 낭독 교재를 졸업하고 처음 꺼냈다. 손에 잡힌 페이지는 '쉼이 있는 낭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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