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 Mar 14. 2019

<캡틴 마블>이 별로였던 당신에게

그건 당신이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캡틴 마블>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어벤저스> 시리즈를 보고 나면 늘 궁금했던 것. 그래서 블랙 위도우 솔로 무비는 대체 언제 나와? 어벤저스가 무려 4편까지 나오고 흑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블랙 팬서>가 나왔는데도 여전히 여성 히어로가 주인공인 마블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인종 문제와 여성 문제에서 어떤 우선순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는 '다음 순서'로 밀려났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논의는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는’ 취급을 당해왔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캡틴 마블>이 등장했다. 혜성 같이.


개봉 전 불매 논쟁이 무색할 만큼 <캡틴 마블>의 흥행은 순조롭다. (누군가의 말처럼 불매의 뜻이 ‘불꽃 예매’였던 모양이다.) 그만큼 영화의 리뷰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캐롤과 고양이를 찬양하는 내용이었지만 가끔씩 영화의 아쉬운 점을 언급하는 글도 있었다. 주로 ‘캐롤이 히어로가 된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캐롤은 우연한 기회로 힘을 얻고, 그 이후 어떤 특별한 계기도 없이 당연하게 히어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삼촌의 죽음 뒤 각성하는 피터 파커(스파이더맨), 애국심과 열정과 끈기로 슈퍼 솔저가 된 스티븐 로저스(캡틴 아메리카) 등등과 다르다. 이는 얄팍하고 게으른 서사다.’ 나는 이 주장에 반박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캐롤의 인생 전체가 계기다


지금까지의 히어로 영화들이 평범한 인간이 일정 계기로 각성하여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캡틴 마블>은 거꾸로 이미 힘을 가진 존재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다가 자신이 원래 누구인지 깨닫고 나서 슈퍼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다. 그러니 캐롤이 히어로가 된 계기를 묻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크리족 전사였던 비어스는 욘-로그(주드 로)에게 힘을 억누르고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세뇌를 당해왔다. 인간 중에서도 여성이었던 캐롤은 유아용 자동차를 탔을 때도, 공군 파일럿 훈련을 받을 때도 ‘너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이지만 2019년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냉대와 멸시 속에 밀쳐진 그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마침내 ‘캡틴 마블’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치듯 몇 장면이 나올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캐롤의 삶은 평가절하 되어왔다. 너는 할 수 없다고, 너무 감정적이라고, 미쳤다고, 나서지 말라고, 여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나는 항상 통제된 채로 싸워왔지. 내가 자유로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캐롤은 말 그대로 무적과 같은 힘을 보여준다. 타고난 선한 의지와 후천적으로 얻은 강한 힘이 비로소 제대로 만난 것이다. 후반부에 그가 폭주하는 부분이 언뜻 유치하거나 과해 보일 수 있지만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수없이 들어야 했던 '너는 할 수 없다'는 말을 깨부술 정도로 충분히 강해야 했을 테니까. (함선의 '벽'을 가차없이 부수는 장면 역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슈퍼 히어로가 되는 것 말고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캐롤의 인생 전체가 그가 히어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위다.



영화 <캡틴 마블> 스틸컷


이 삶을 모르는 당신에게


내게는 애국심이나 공명심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영웅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훨씬 더 납득이 가는 서사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넘어진 캐롤이 두 주먹을 꽉 쥐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울컥하지 않을 여자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캐롤은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거의 ‘여성’이라는 성 그 자체처럼 보인다. 여자들이라면 모두 그 순간을 안다. 과거에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 겪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이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웃지 않았다고 사과문을 쓰고,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밤에 함께 술을 마셨기 때문에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이미 한 번쯤은 몰카에 찍혔을 것이라고 반 정도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영화에 대한 불만 중에서 퓨리 국장이 다소 우스운 캐릭터로 전락한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도 보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 영화를 보고서 고작 퓨리 국장의 캐릭터 붕괴를 걱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일까. 갑자기 인생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영웅 서사가 빈약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캐롤 댄버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당신의 세계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인생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에 대해. 몰랐겠지만, 지금까지 여자들은 그렇게 해왔다.




작가의 이전글 사라진 여자, 그리고 살아남은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